盧 "럼즈펠드, 안 닳는 건전지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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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17일 오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청와대에서 만나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盧대통령이 "고된 여행이었을 텐데 건강해 보인다"고 인사하자 럼즈펠드 장관은 "괌.오키나와를 경유해 왔다. 생큐. 아이 앰 영"이라고 인사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盧대통령은 어느 건전지 회사의 광고를 인용, "아무리 뛰어도 힘이 닳지 않는 건전지와 같다"고 했고 럼즈펠드 장관은 "I hope so(그러길 바란다)"라고 답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좌석을 盧대통령과 나란히 배열하는 국가원수급 예우도 눈길을 끌었다. "미.일.중.러의 외교.국방장관은 원래 이렇게 배치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盧대통령은 "이라크가 다시 무정부 상태로 돌아가면 안된다"며 "이라크에서 최근 미군이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우리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라크가 민주질서를 존중하는 사회로 발전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이 "추가 파병이 어려운 결정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며 "盧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하고 감사드린다"고 했고, 盧대통령은 이런 감사에 사의를 표명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 럼즈펠드 장관은 "용산기지 문제는 계속 협상해 12월까지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 유지인 만큼 어떤 결론이 나도 한반도의 전쟁억지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盧대통령은 "여러 전략적 개념이 바뀌고 군사적 능력도 바뀌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측면에서 방위 공약은 지속적으로 더욱 강화돼 나갈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의 안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방한 기간 내내 말을 아꼈다. 16일 전용기를 이용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기자들이 몰렸지만 간단한 포즈조차 취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17일 조영길 국방부장관과의 단독회담 공개 환담에서도 이어졌다. 취재진이 몰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曺장관과의 공동회견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을 주한 미대사관 소속 통역에게 재차 확인하는 등 거듭 신중하고 꼼꼼한 모습을 보였다.

최훈.이영종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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