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성장 막는 효소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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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생명의 신비를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한 단백질이 미국에 유학증인 한국인 분자생물학자에 의해 발견됐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후 연수과정을 이수중인 황덕수박사(37)는 세포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IciA」라는 물질을 분리해냈다고 미국의 과학 전문지 디스커버 최근호가 특징으로 소개했다.
IciA의 Ici는 염색체 분화의 억제물질이란 뜻이며 A는 이런 물질가운데서 첫 번째로 발견됐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박테리아의 세포에서 추출된 IciA는 DNA가 복제되는 것을 억제하는 효소의 일종.
인체의 세포든 박테리아의 세포든 간에 DNA의 복제형식은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DNA의 복제를 촉발시키는 효소들만 발견돼왔을 뿐 이를 멈추게 하는 효소의 추출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특히 이번 연구결과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분자생물학의 권위자인 콘버그박사의 지도하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황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IciA는 DNA와 복제촉진단백질의 결합을 방해함으로써, DNA의 복제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황박사는『IciA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일단 복제가 진행되면 이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IciA의 발견이 관심을 끄는 것은, 이물질을 암의 치료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암이란 특정세포의 DNA가 무한정 복제돼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상태로 이 경우IciA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추측될 수 있다.
이는 쉽게 말해 인체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세포의 증식을 촉진하는 액셀러레이터와 이를 억제하는 브레이크가 존재하는데 암의 경우에 브레이크의 고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IciA가 브레이크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연구는 황박사의 뛰어난 아이디어와 콘버그박사 특유의 연구신념이 빚어낸 합작 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콘버그박사는『나는 연구에 있어 운을 믿지 않는다. 오직 부단한 노력만이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지난 59년 DNA의 복제를 가능(촉진)게 하는「DNA폴리머레이즈」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도『안되면 될 때까지 해보는 노력』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황박사는『수많은 선배들이 나와 같은 실험에 실패한 것을 알고, 실험의 접근법을 완전히 바꾼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즉 DNA의 기능상 변화를 추적하는 것보다는 특정 물질의 분리를 먼저 시행키로 한 것이다.
콘버그박사는 이 같은 황박사의 연구계획을 듣고『아주 꾀 많은 동양친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결국 황박사의 계획대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IciA를 추출케 됐고, 뒤이어 이물질의 세포내 기능을 확인하고, 이 물질을 만드는 암호를 지닌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밝힌 것이다.
과거 DNA폴리머레이즈를 발견, 노벨상을 탄 스승의 업적과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IciA의 발견은 황박사 나름의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황박사와 콘버그박사는 그러나『이번의 IciA발견이 당장 암의 치료에 이용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며『암 치료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만 생각해달라』고 주문했다.
황박사의 이번 연구는 생명과학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증거로 풀이된다.
황박사는 연대 생화학과출신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미시간 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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