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분리독립이 최선”/유고언론인 현지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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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질적 2개의 문화가 갈등의 원인/칼이 아닌 인내로 엉킨매듭 풀어야
내전 일보직전까지 갔던 유고사태는 1일 연방군이 병영으로 철수를 개시하고 슬로베니아공화국 주민들이 정상생활로 복귀하는등 점차 평온을 되찾고 있다.
그러나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유고사태가 완전해결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앞으로의 전망 등을 알아보기 위해 분쟁 당사자격인 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인 기자를 한자리에 초청 긴급 현지대담을 마련했다.
1일 오후 4시부터 5시30분까지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 장 크레브돔에 있는 프레스센터 휴게실에서 본사 유재식 특파원의 주선으로 마련된 이 대담에는 류블랴나의 시사주간 트리부나지 토마즈 드로스크기자(39)와 베오그라드 제1방송의 드라간 스타비야닌기자(38)가 참석했다.<편집자주>
­이번 사태의 직접원인은 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공화국의 독립선언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뿐 근본적 원인은 다른데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타비야닌=유고의 동서사이엔 두가지 전혀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 역사적 배경도 전혀 다르다.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는 터키 지배하에 있던 세르비아보다 일찍 발전했고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세르비아인은 지난 40년간의 공산체제 기간중 정치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에 대해 슬로베니아인들이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
▲드로스크=슬로베니아인이 세르비아인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정치적 발전은 경제적 발전과 병행하는 것으로 경제적으로 발전한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에 비해 민주적인 국가로 발전했다.
▲스타비야닌=다민족국가인 유고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 요인은 종교문제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 문제는 민족간,특히 세르비아와 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의 뿌리깊은 불신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드로스크=역사·문화·종교적 차이를 열거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의미가 없다. 이번 슬로베니아 사태의 직접원인은 연방군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티토의 주도로 나치에 항거한 파르티잔에서 출발한 군부는 지난 40년간 모든 특권을 장악해 왔다. 그들의 역사적 임무가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군부는 자신들이 국민을 지도해야 한다는 환상에 젖어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시대착오적 착각에 빠져 있는 군부를 통제할 세력이 유고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마르코비치총리 스스로 『군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시인한 것은 정말 한심스런 일이며 이 때문에 군이 민간인을 살상한 이번 사태가 야기됐다.
▲스타비야닌=군부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슬로베니아인 스스로 자신들만 연방정부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공산독재의 피해는 모두가 공유했다. 45년 독립후 비민주적·폐쇄적 체제가 경제상황을 어렵게 했지만 슬로베니아는 피해를 가장 적게 봤다.
만약 세르비아인들이 1918년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를 주도적으로 건설하지 않았다면 슬로베니아인들이 오늘날같은 풍요를 누릴 수 있겠는가.
▲드로스크=말도 안되는 소리다. 슬로베니아가 진작 유고의 일원이 아닌 독립국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가 됐을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더이상 유고중앙정부에 「돈만 대는 바보」가 될 수 없다.
▲스타비야닌=슬로베니아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식으로 독립을 이해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옛날 영토를 요구해오면 연방정부에 기대려 하면서 합법적인 세금은 못내겠다고 버티고 있다.
▲드로스크=사태해결의 방법은 한가지다. 슬로베니아가 완전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 세르비아 등 이웃 공화국들과 「친하게」사는 것 뿐이다.
▲스타비야닌=슬로베니아가 독립하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에 동감한다.
문제는 분리독립을 어떻게 평화적·인도적으로 진행하느냐다. 슬로베니아가 그토록 분리독립을 원한다면 우리는 행운을 기원하는 수 밖에 별도리가 없다. 슬로베니아는 이미 유고연방공화국 소속이 아니다.
▲드로스크=맞는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평화적으로 분리독립을 협상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협상의 준비가 돼있다. 평화적인 절차를 거쳐 독립이 돼야 앞으로도 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는 친한 이웃으로 지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해결돼야 하는 조건은 연방군이 즉각 병영으로 철수해야 하며 정치지도자들의 결정을 군이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비야닌=앞으로의 국가체제중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독립직후 13개주 시절 미국의 형태라 생각한다. 어쨌든 세르비아인들은 슬로베니아인들과의 우정에 금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
▲드로스크=헝클어진 실타래는 칼로 끊을 것이 아니라 인내를 갖고 풀어야 한다. 칼로 끊어버리면 나중에 다시 이어도 매듭이 생기게 마련이다.<정리=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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