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 저자의 진실은 '회상성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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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괴로운 기억일수록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36년간의 일본의 침략기간은 쉽게 지울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최근 이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과 일본에서조차 출판금지령이 떨어진 요코 가와시마 윗킨스가 쓴 ‘요코 이야기’의 미국내 교과과정 필독서 채택이 바로 그 발단이다.

◇가해자국민의 ‘무의식적 기억 변경’ 가능성

이 책에 대해 출판사에서는 “북한에서 일본의 고향까지 죽음의 길을 헤쳐갔던 한 소녀와 가족의 가슴 아픈 이야기”라며 일본의 ‘안네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를 제외하고 실화라고 소개되는 이 책의 내용이 실제 역사와 맞지 않거나 한국인의 강간위협에 시달렸다는 등 사실무근의 내용이 실려 있어 결국 미국에서도 필독서 채택을 취소하는 등의 소동이 뒤늦게 벌어지고 있다.

왜 저자는 이같이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을 썼을까. 두 가지 원인으로 분석된다. 하나는 의도적인 역사 왜곡의 가능성, 다른 하나는 가해자 입장의 일본국민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 부정일 수 있다.

후자의 경우처럼 자신의 불리한 기억, 혹은 부정하고 싶은 기억을 무의식중에 변경하며 바뀐 기억이 옳다고 여기는 정신질환이 ‘회상성 조작(retrospective falsification)’이다.

◇뇌에서 기억과 감정은 ‘해마’에서 함께

사람의 기억은 주관적이며 감정적이다. 따라서 같은 일을 겪어도 그 상황을 각기 다르게 해석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심하게 기억을 변경해 기억하는 경우를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백종우 교수는 회상성 조작이라고 설명한다.

회상성 조작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기억을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필요한 쪽으로 변형시켜 기억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사람의 기억은 뇌에서 ‘해마’라고 하는 부분에서 맡는다. 이 해마는 기억뿐 아니라 감정과도관련이 깊어 기억과 감정이 동시에 뇌에서 처리 될 수 있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인격 장애나 신경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도가 지나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의 경우 뇌에서 충동을 조절하는 물질인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환상적 거짓말, 작화증

비슷한 증세로 환상적 거짓말(pseudologia fantastica), 작화증(confabulation)도 있다.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서국희 교수에 따르면 환상적 거짓말은 병적인 거짓말이라고도 하며 반사회적 성격장애나 범죄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증세로, 사실을 완전히 왜곡해 말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악의가 있는 고의성 거짓말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증세로 회상성 조작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작화증은 기억의 일부가 완전히 사라져 이를 다른 기억을 만들어 앞뒤를 ??추려는 행동에서 기억이 변형되는 증세를 일??는다. 치매환자 등에 많이 나타나며 의도적이지 않은 기억장애를 덮기 위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증세다.

이외에 입원 치료를 받으려고 환자가 꾸미는 병적인 허언증인 뮌하우젠 증후군 (Munchausen syndrome)등이 기억을 변조, 또는 위조하는 대표적인 정신 질환이다.

◇회상성 조작은 정신방어의 일종

사실 병적인 증세가 아니라면 회상성 조작은 일반인들에게도 흔하게 나타나는 증세로 꼭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 정신증세는 아니다. 오히려 피하고 싶은 정신적인 상처에 대한 방어기재로 작동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이론에 따르면 요코 이야기의 사례는 저자의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라면 회상성조작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기억 변경이 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직 가설에 가까운 수준이기에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다. 특히 정상인들의 특정 기억을 왜곡하거나 변형해서 기억하는 자기방어기재에 대해서는 증명된 사례는 없다.

서 교수는 “의식을 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병으로 봐야 맞다”며 “정신이 명료한 상태라면 전체적으로 기억을 왜곡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는 기억이 감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의식이 명료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억하고 있는 사건의 일부를 다르게 기억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긍, 기억의 변경이 있을 수 있다며 일부 인정했다.【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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