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 60주년' 산문 연 봉암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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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서 희양산 봉암사(鳳巖寺)로 가는 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1982년 조계종 종립 특별선원(禪院)으로 지정되면서 산문을 닫아 걸었기 때문이다. 일반 신도나 향화객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일년 중 하루 사월 초파일 뿐이다. 이런'성역(聖域)'에 24일 예외가 생겼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방문하면서 함께 간 취재진에 산문을 열어준 것이다. 이번 방문은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기념해 선승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봉암사 결사'란 1947년 성철.자운 스님 등 20, 30대 비구승들이 모임을 만들어 불교 쇄신운동을 벌인 것을 말한다. 이들은 "출가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자"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는 기치 아래 화두참선에 진력하는 기풍을 일으켰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의 규칙에 따라 스님들이 직접 밭을 매고 곡식을 찧어먹고는 했다. 지관 스님도 결사 운동의 끝무렵인 1950년 봉암사에서 음식 등을 수발하는 '별좌'역할을 하며 동참했었다.

주지 함현(涵玄.53) 스님과 자리를 함께한 지관 스님은 "당시 빨치산이 들이닥쳐 쌀과 곶감, 고무신까지 모조리 털어간 사건이 일어났다. 파출소 지소에 신고를 했더니 경찰이 올라와 '절에 두 명만 남고 모두 해산하라'고 명령해 결국 모임이 흩어지게 됐다"고 회상했다.

봉암사엔 현재 성적당에서 동안거를 나는 스님이 20명, 서당에서 따로 정진하는 결사 스님 23명, 기본 선원에서 공부하는 어린 스님 20명 등 모두 74명의 스님이 수행 중인데, 선방은 이번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곳 종립(宗立) 태고선원의 원장 정광(淨光.65)스님은 "수좌(선승을 높여 부르는 말)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10개월 결사(모임)를 시작해 이제 9개월째를 맞았다"면서 "신청자 중에서 30여 명을 선발해 정진을 시작했으나 청규(규칙)를 어겨 1/3은 퇴방당했다"고 전했다.

스님은 "'조부모성'(朝夫暮聖:아침에는 범부였지만 저녁에는 성인이 되자) 정신으로 하는 게 참선"이라며 "동안거 스님은 하루 10시간, 결사 스님은 하루 12시간씩 정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지 함현(涵玄.53) 스님은 "사찰이 소유한 희양산 일대는 국내 유일의 '생태보전 유전자보호지역'이나 백두대간에 속한 산이라 등산객이 자꾸 들어와 청정수행에 지장을 준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경=조현욱 기자

◆안거= 동안거(冬安居)의 안거는 비와 장마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바르사(Varsa)를 번역한 것이다. 인도의 경우 외출과 활동이 불편한 우기인 여름 3개월 동안 승려들이 동굴이나 사원에 모여 좌선 수행에 전념하던 전통이 있었다. 이 관행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동안거가 보태져 한국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10월 15일부터 그 다음해 1월 15일까지 두 차례 선방에서 참선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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