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G10으로 <16> 중기 네트워크 강화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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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가동률이 낮다' '영업 실적이 부진하다' '일 시킬 사람이 없다' '은행이 돈을 꿔 주지 않는다'….

1960년대에 경제발전의 걸음을 내디딘 이래 40년 넘게 늘 접하는 작은 기업들의 어려움이다. 왜 그런지 그 설명 또한 변함이 없다. 잘못된 정책 때문에, 큰 기업들이 장사거리를 다 앗아가서, 담보가 없어서, 젊은이가 3D(더럽고, 어렵고, 힘든 일)업종을 피해서 등등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본 중소기업을 한번 보자. 그들도 예전에는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다. 대기업에 굽실거리며 하청을 받고, 경기가 나빠 납품 가격이 깎여도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러던 그들에게 '잃어버린 10년' 불황이 좋은 약이 됐다. 기술력을 키워 불경기와 대기업의 고자세를 이겨내겠다는 각오가 꿈틀댄 것이다. '나만의 기술'을 향한 10년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이들을 대기업이 제 발로 찾아오는 중소기업으로 바꿔 놓았다. 경제산업성은 "세계 1위를 달리는 일본 중소기업이 1500개나 된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우리 중소기업도 자기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업체가 꽤 많다. 스스로 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형 중소기업'이 1만3000개나 있다. 문제는 그 기술과 노하우가 하나로 엮어지지 않는 데 있다.

일본 도쿄도 오타(大田)구 중소기업 단지의 업체들은 웬만한 일은 다른 업체와 '같이'한다. 그곳 업체들은 대기업에 끌려다니는 하청(下請) 관계가 아니라 새로운 납품 관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여러 개의 중소 업체가 모인 '그룹'이 대기업으로부터 공동으로 주문을 받는 것이다.

작은 톱니바퀴 한 가지를 주문받으면 절삭, 열처리, 표면 가공 등 각 공정에 '자기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업체들이 동시에 달라붙어 작업하는 식이다. 대기업과 대등한 입장이라고 해서 이를 횡청(橫請:요코우케)이라고 부른다.

에이쇼금속의 사야마 유치히로 대표는 "횡청 네트워크가 대기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교섭력을 높이고 있다"고 뽐낸다. 작은 업체들이 하나로 모은 '작은 기술'이 대기업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 중소기업 사이에서도 네트워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화유통북스의 공동물류창고를 활용하는 150개 출판사가 물류 걱정을 접고 각자 좋은 책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고, 광주 평동의 공동 트라이아웃(시험생산) 센터를 이용하는 17개 금형업체는 시험 기간을 24분의 1로, 실험 비용을 3분의 1로 줄이고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란 게 대부분의 중소기업에 아직은 개념부터가 생소한 실정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갑수 수석연구원은 "우리 중소기업도 응집으로 '작은 자의 불이익'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술 개발부터 생산.물류.유통, 그리고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그 전(全)과정에 '네트워크'를 동원해 '큰 기업'행세를 하자는 얘기다.

방방곡곡의 중소기업이 끼리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늘 정부에 기대야 하는 대기업에 상생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허리' 중소기업, 이젠 네트워크로 뭉쳐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의 대등한 파트너로서 G10(10대 강국)을 같이 일궈낼 수 있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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