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땐 일당 10만원 예사(신도시 이것이 문제다: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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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애써 자재구해도 일손없어 쉬기 일쑤/“밑지는 장사 하겠나”… 공사부실 걱정
분당 신도시 건설현장에는 여느 현장에서 보기 힘든 간이숙소와 대형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사라졌던 현장근로자용 간이숙소는 지방에서 올라온 잡부들을 위해 이곳 주택건설업체들이 다시 부활시켰다.
45인승 대형버스는 매일 아침·저녁에 현장과 서울 잠실·경기도 성남을 오가며 출퇴근 근로자들을 실어나른다.
기능공은 물론 현장 잡부도 구하기 어렵게 되자 건설회사들이 다투어 마련한 「인력유치 프로그램」이다.
『보다 많은 인력을 끌어모으고 애써 구해놓은 인력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 현장에 적어도 1천1백명은 있어야 하는데 현재 확보한 인력은 겨우 9백명 정도입니다.』
현대산업개발 분당사업소 김판석 소장은 매일 아침 현장인력점검이 가장 큰 일과다.
자재난과 함께 불어닥친 인력난은 중소업체일수록 심각하다. 그래서 공사는 늘 부실의 우려를 안고 있다.
2단계 시공업체인 J사는 지난 4월부터 거의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인부와 중장비를 갖춰놓으면 레미콘과 철근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작업을 못했다. 전직원이 동원돼 자재를 겨우 마련하면 제때 현장인부를 구하지 못해 허탕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리부의 이모차장은 『노임이나 건설장비 대여료를 따져보면 통상 하루에 3백입방m의 콘크리트 작업을 해야 수지가 맞는데,레미콘이 절반이나 3분의 1 정도밖에 공급되지 않아 2중으로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라며 한숨지었다.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공사를 계속 진행시키기 위해 불량레미콘이건 아니건 따질 겨를없이 물량확보에 쩔쩔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절대공기를 못맞추는 상황에서 레미콘 공급추세에 맞춰 현장인부를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인력을 충분히 활용하지도 못하면서 임금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업체들은 인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전에는 달마다 하던 노임지급을 요즘은 보름마다 현금으로 하고 있다.
인력이 달리자 노임도 자연 크게 올랐다.
잡부의 경우 지난해 4월 신도시 착공때는 일당 1만2천원이었는데 요즘은 2만원을 주어도 구하기 어렵다. 목수·비계공 등 기능공의 일당은 7∼8만원선인데 급할때는 10만원을 주어야 한다.
인력난이 부른 노임상승은 평당 건축비가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밑지는 장사를 할 수 없는 건설업체들이 아무래도 제대로 시공하겠느냐고 입주 예정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K건설의 한 관계자는 신도시 착공이후 1년동안 인건비가 평균 15% 이상 올랐는데 분양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부의 올해 건설인력 수급전망에 따르면 수요가 1백22만1천명인데 반해 공급은 1만16만5천명으로 5만6천명이 부족하리란 분석이다.
그러나 문제는 올해보다 내년이다. 올해는 1만5천가구분의 신도시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지만,내년말부터 93년초 사이 10만가구의 건설공사가 한꺼번에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건설부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9만명이 많은 14만명의 건설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금난 또한 현장의 큰 고민거리다.
신도시 주택건설업체들이 택지구입대금으로 토지개발공사에 미리 낸 돈은 3조원. 업체들은 곧 잔금으로 8천8백억원을 내야 하는데,정부가 지난달부터 건설경기 진정을 위해 은행대출을 막은데다 분양대상자들로부터의 미수금도 1조9천억원대에 이른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높은 이자의 사채를 끌어쓰고 있다고 호소한다.
D건설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주택가격안정을 위해 떠맡기다시피 신도시택지를 선분양하더니만 이제와서 건설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은행으로부터의 자금조달길을 막으면 결국 집을 짓지 말라는 이야기냐』고 지적했다.
인력·자금난은 자재난과 함께 결국 부실과 공사지연을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 정부가 한 약속(공기)대로 이미집을 팔았거나 세를 살고 있는 입주예정자들의 입주,이에 따른 이사 등 일대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또 최근들어 한풀 꺾인 집값이 다시 상승하는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양재찬·민병관·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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