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7가] 국외자가 쓴 약물 편지

중앙일보

입력

메이저리그의 시한 폭탄이 또다시 째깍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스테로이드 폭탄입니다.

지난해 3월 출범한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조사위원회’는 최근 구단주 들을 상대로 볼멘소리를 냈습니다. 위원장인 조지 미첼 전 상원 의원이 구단주 모 임에 나와 “구단들의 비협조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또다시 정부나 의회쪽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 라고 경고했습니다.

버드 실릭 커미셔너가 직접 지명한 책임자인 미첼로서는 발끈할만도 합니다. 막대한 비용을 쓰면서도 1년이 다 돼 가도록 이 렇다 할 결과물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예산 낭비라는 비아냥만 듣고 있으니 말입니 다. 결국 그는 정 안되면 2005년과 2006년 청문회처럼 법적 소환을 할 수 있는 의 회나 정부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구단주들에게 최후 통첩을 한 셈입니다.

미첼의 경고는 동정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구단과 선수들의 자발적 인 협조를 기대하기에는 조사 주체자로서의 한계가 너무도 뻔했기 때문입니다. 매 스컴도 공권력의 개입을 들먹이는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칼럼리스트는 “선수들의 금지 약물과 관련해 그동안 언론 스스로 밝혀낸 것이 뭐가 있느냐.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화부터 벌컥 내고 대답은 전부 ‘아니오’였다. 어쩌다 팀 트레이너나 닥터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물증이 있는 게 아니라 추측이었을 뿐이다. 그런 것들을 보도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언론 이 확실한 물증을 갖고 보도했던 것은 FBI의 수사 기록이나 수사관들의 말, 그리 고 청문회에서 털어놓은 일부 선수들의 고백이었다.” 그는 매조지하듯 결론까지 내렸습니다. “메이저리그가 진정 약물의 진실을 밝히고싶다면 미첼이나 언론이 아닌, 법적 수단을 적극 수용하는 것, 그 길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약물 문제를 또다시 의회나 정부의 힘에 기대어 푸는 것이 상책일까요? 국외자의 입장에서는 선뜻 손 내밀기가 망설여 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약물 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미국 사회의 지향점에 비춰볼 때 지극히 온당한 일입니 다. 무엇보다 약물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심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그 렇습니다.

그렇지만 약물 문제가 다시 정치인들의 손에 넘어갔을 때 얼마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점도 그리 명쾌하지는 않습니다 . 가뜩이나 ‘한 건’에 목마른 정치인들이 진실의 구명에 얼마나 천착할 수 있느 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 청문회서 ‘시인도, 부인도 않는’ 마크 맥과이어에 대해 서 어땠습니까 ?

또 진실이 파헤쳐진다 한들 그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미 메이저리그 85% 이상의 선수들이 약물 복용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고, 그에 따른 징계 규정도 수정의 수정 을 거듭하여 엄중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

오히려 약 물 문제에 대한 타율적인 강제는 메이저리그의 자정 능력을 떨어트려 부메랑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는 메이저리그의 기반이 튼실하기에 급속히 나타 날 현상은 아니지만 1994년의 선수 노조 파업 이후와 같은 저조기의 원인(遠因)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약물 문제는 메이저리그 스스로 풀어야 할 사안 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얼마전 맥과이어의 명예의 전당 헌액 좌절 과정에서 제시 됐습니다. 기자와 팬을 아우르는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준엄한 심판입니 다.

구자겸 USA 중앙 스포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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