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의 점수매김은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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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육부는 94학년도부터 적용될 새 대입 내신성적에 「선행」을 점수로 따져 반영토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봉사활동 평가의 한 항목으로 반영되는 선행의 가산점이 입시 총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리는 이같은 교육부의 방침을 전혀 찬성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선행을 권장키 위해 그러한 인위적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정책발상 자체부터가 봉사와 선행의 본질을 망각한 비교육적 접근이라고 본다.
선행을 내신성적의 일부로 점수화시키는데 반대하는 첫번째 이유도 바로 극히 상식적인 선행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봉사와 선행은 인류사회를 지탱해주는 중요 버팀목들중의 하나다.특히 선행은 그말의 뜻대로 어떤 대가나 보답을 바라지 않는 「무보상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종교는 봉사와 선행을 신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하면서 그 실천에 남다른 열의와 수범을 보여 주려 한다. 기독교의 경우 「왼손이 하는 일을 바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강조하고 있고 불교도 자랑하거나 마음에 간직하거나 대가를 바라는 등으로 봉사와 자비를 행한데 대한 상을 지어 갖는 것을 절대 금하고 있다.
이같은 봉사와 선행의 무보상적인 특성은 세속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좀 극단적으로 말해 선행을 제품화시켜 등급을 매긴다거나 입시경쟁에까지 결부시키는 동기부여는 전근대적인 식민제국주의적 발상이 아니냐는 생각까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행은 어디까지나 공동체 의식과 「연민의 정」을 일깨우는 심성의 개발이 우선해야지 노동시장에서의 인센티브같은 물질보상으로 장려해서는 그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다음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학생의 선행을 점수화하는 것은 선행 자체에 대한 가치관을 비뚤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사는 사회를 더 잘 가꾸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이 당연한 인성의 발로여야지 이렇게 하면 나에게 보상이 오는 행위로 느끼게 될 때 선행의 가치관은 마음속에 심어질 수 없는 것이다.
세번째의 반대 이유는 봉사와 선행에 절대 따라서는 안될 「공명심」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양로원,고아원,가난한 이웃 등에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선행경쟁」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물질에 바탕한 어쭙잖은 공명심을 자극할 우려마저 없지 않다.
불심천자로 유명한 중국 양나라 무제가 지공스님에게 절과 탑을 많이 세운 자신의 불사업적을 자랑하면서 어떤 공덕이 되겠느냐고 묻자 지공스님은 『지금까지 세운 절과 탑들을 모두 헐어버리시오』라고 힐난했다. 그같은 선행과 보시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상에 집착하면 아무런 공덕도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교육부가 선행 대입내신성적 점수화를 확정 발표하기전 거듭 재고해 철회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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