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거래 공사서 경영자문까지 각광받는 「경제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국제거래가 빈번해짐에 따라 나라 안팎에서 법률적인 문제로 홍역을 앓는 경우가 많다.
국제무역관련 송사·해외투자계약·합작회사 설립 등이 많아질수록 자연히 분쟁소지도 늘어나는 것이어서 기업 등은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최근에는 상품자체에 대한 소송도 점증하고 있어 『기업이 가는 곳에 변호사도 따라 간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같은 추세를 감안, 지난86년부터 기업 내에 법무실을 설치, 삼성·현대 등 대그룹의 경우 상임고문변호사만 모두 합쳐 15∼20명 선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새 사업을 추진할 때 법적인 문제가 생겨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문제가 터졌을 때 신속히 처리하는 한편 ▲해외 고용변호사들과의 업무협조 등 역할을 맡는다. 또 일부 거물급 변호사들은 정부나 외국을 상대로 로비활동도 띠고 최고 경영자의 경영자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최고경영자들과 자연스레 밀착될 수밖에 없고 통상 사장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등 대우도 좋은 편이다.
지난86년부터 현대자동차의 법무실장 자리를 맡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38·상무)는87년7월 GM 및 포드의 캐나다 자회사들이 그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프니엑셀 등을 덤핑혐의로 제소하자 『캐나다 실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 캐나다 정부로부터 무혐의 판정을 받아 잃어버릴 뻔 했던 배미 시장을 찾아냈다.
그후 회사를 위기에서 구한하 변호사에 대한 경영진의 신망이 두터워진 것은 물론이다.
현대그룹은 하 변호사 외에 5명의 비상근 고문 변호사를 두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의 경우작년 한햇동안 국내외 소송비용만도 1백만달러가 넘게 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그룹 본사에 상임고문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건희 회장과 동창인 인형무 상임고문을 팀장으로 4명의 전담변호사가 계열사의 각종 법률문제를 전담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현재 미국변호사 2명과 호주변호사 1명을 고문 변호사로 쓰고 있으며 해외에서의 송사는 주로 현지 변호사에 의존하고 있다.
또 럭키금성(2명)·대우(3명)·한진(1명)·롯데그룹(4명·촉탁)등도 고문변호사를 채용하고 있는데 굵직한 송사사건은 국내 법률사무소나 법률회사 혹은 해외 현지 변호사에게 맡기고 있다. 국제화·개방화로 기업의 대외거래가 늘면서 사건 자체가 복잡하게 얽히는 경우가 많아 고문변호사들로만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변호사 20명 이상을 거느린 덩치 큰 법률회사는 김·장 등 4∼5군데이며 10∼20명 규모의 법률회사도 5곳이나 된다.
특히 김·장(변호사 70명·회계사 8명)등 대형 법률회사의 경우 일반 민·형사 사건뿐만 아니라 외자도입·외환관리에서 무역·조세·노동 등 경제관련 모든 송사를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법률회사의 고객은 비단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개인·정부·각종단체·외국인 투자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재 김·장의 경우미국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이 무려 13명으로 국내 소송과 해외소송의 비율이 반반정도 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기업들의 이같은 경제변호사활용은 아직 선진국과는 비교가 안돼 미국의 경우 변호사수가 60만 명이나 되는 탓도 있지만 ▲GM사 2백50여명 ▲포드사 1백50여명 ▲IBM사 2백50여명 등의 고문변호사가 포진, 어려운 수술을 할 때 여러 명의 의사가 달라붙듯 한 사건 해결에 수많은 변호사가 동원되기도 한다. 일본기업도 지난 60년말부터 고문변호사의 필요성을 인식, 대기업의 경우 10∼20명의 고문변호사가 회사의 업무 전반을 꿰뚫고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장 법률사무소의 신지택 변호사는 『국내기업들은 외국에서 따귀를 맞고 돈을 물고 나야 뒤늦게 법률자문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경제변호사 필요성에 대한 낮은 인식을 지적했다.
그러나 앞으로 국내에서도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라 고문변호사를 두는 기업이 늘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예컨대 해외에 투자를 하더라도 세금문제를 포함한 그 나라의 법률문제를 미리 파악, 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막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의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