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승객 126명 사살/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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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크교 민병대 열차 습격/유혈 총선/국민의회당 과반 미달
【찬디가르·루디아나·뉴델리 외신종합=연합】 인도 시크교 민병대들이 15일 북부 펀잡주에서 운행중이던 두 열차를 습격,승객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1백26명이 숨지고 76명이 부상했다고 인도경찰이 밝혔다.
각각 10여명으로 구성된 2개 민병대는 이날 저녁 9시30분을 전후해 10분 간격으로 종착역 루디아나시를 향해 천천히 달리던 두 열차를 정지시킨 다음 힌두교도들을 골라 자동화기로 사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생존자들은 열차를 장악한 민병대가 먼저 시크교도 승객들을 내리게 한다음 여자와 아이들로부터 남자들을 분리,자동화기를 쏴댔다고 증언했으나 희생자중에는 어린이와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도 PTI 통신의 한 기자는 시크교 민병대가 저녁시간에 덮치는 바람에 빵을 손에 쥐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전하고 철로변에 시체들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도망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총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연일 계속되는 과격 시크교도들의 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당국이 병력을 동원,대대적인 검거 및 수색을 개시한지 하루만에 발생한 것으로 시크교도들이 무력투쟁을 벌여온 이래 최악의 유혈사태로 꼽히고 있다.
오는 22일 실시되는 펀잡주 의회선거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한 시크교 민병대는 지금까지 최소한 21명의 후보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고 라지브 간디 전총리의 암살로 당초 계획보다 3주 늦은 15일 7개주와 1개연방 직속령에서 실시된 인도총선 마지막 3차투표의 초반개표 결과 간디 전총리가 이끌던 국민의회당이 단연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회당은 연립정부를 구성할 상대를 고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 TV의 한 선거분석가는 16일 국민의회당이 이번 총선에서 지난 89년 총선때보다 13석이 더 많은 약2백10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AFP 통신이 인도 국영 TV 보도를 인용,17일 보도한 잠정 개표 결과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현재 총의석 5백43석 가운데 5백11개 의석에 대한 개표가 진행되고 있으며 개표가 끝난 1백73개 의석중 국민의회당이 1백2석,우익 힌두바라티야 자나타당(BJP) 49석,자나타 달당 2석,인도공산당 3석,기타 정당들이 17석을 각각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크교도 사실상 “선전포고”/힌두교도와 테러­보복테러 악순환(해설)
간디 전총리의 피살사건으로 인도정국이 일촉즉발의 「살얼음판」을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시크교 민병대가 15일 힌두교도들을 대량 살해한 것은 사실상 인도정부에 전면전을 선포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 83년부터 인도의 펀잡주와 아삼주를 중심으로 시크교도들의 분리독립운동이 본격화된 이래 이제까지 힌두교도들과의 종교분쟁 희생자는 모두 1만3천여명에 이른다.
15일 발생한 펀잡주 루디아나의 열차 테러사건에서는 1백26명의 사망자가 발생,양측 교도들의 사망자수는 금년에만도 2천2백30명으로 늘어났다.
이같은 시크교와 힌두교의 극한 대립에도 불구,그동안 시크교도들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계속 인도정부에 밀려왔다.
더구나 라지브 간디 전총리의 피살사건은 시크교도들에 대한 다수 힌두교인들의 탄압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 됐다.
특히 지난 89년 총선에서 86석을 차지,강력한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한 힌두교부흥주 정당인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이 노골적인 대 시크교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시크교도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시크교는 이같은 탄압·위기국면을 일거에 분쇄하고 22일로 다가온 펀잡주 선거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충격요법」이 부득이 하다고 판단한듯 하다.
수세에 몰릴수록 적극적인 공세를 전개,인도정부 및 힌두교도들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편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내다본 셈이다.
여기에는 간디 피살의 동정분위기를 총선 승리로 연결시키려는 국민의회당과 정권참여의 호기를 맞은 BJP가 결코 선거 연기사태를 빚을지도 모를 대역습을 감행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도 한몫을 담당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을 수사중인 펀잡주 경찰 당국은 시크교 민병대가 동시에 각기 다른 민간열차를 급습,힌두교도들만 골라 기관총으로 무차별 살해한 것으로 미루어 하나의 시크교 테러단체가 두 사건을 모두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단체는 그동안 정부요인과 힌두교도들에 대한 테러행위를 주도해온 칼리스탄코만도군(KCF).
테러단체가 누구든간에 힌두교도들의 보복테러는 일반 시크교도들에게로 돌려질 것이 확실한만큼 앞으로는 힌두­시크교간의 죽고 죽이는 살육의 악순환이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이와 아울러 간디 전총리 암살사건으로 연기됐다가 12일과 15일 실시된 인도의 최대 유혈선거에서 어느 정당도 다수당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인도정국은 최대의 혼란과 냉소적 정치분위기에 휩쓸려들고 있다.
선거가 실시된 4백5곳중 17일 오전 현재 1백84개 선거구에서 개표가 완료,국민의회당이 1백9석,BJP가 50석,자나타 달당이 2석,인도공산당(CPI­M)이 7석을 차지했고 나머지 18석은 군소정당이 나눠가졌다.
국민의회당은 간디 피살에 따른 동정표를 기대,과반수 득표를 거냥했으나 세차례 나눠 실시되고 있는 5백45석중 선거가 취소된 카슈미르지역의 17석과 정부지명분 2석을 제외한 5백36석의 과반수 2백68석에 크게 못미치는 2백10석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총선후 제2당이 확실시되는 BJP,싱 전총리가 이끄는 국민전선 등과의 연정이 불가피하게 된 셈이다.
이로써 회교도에 대한 대우문제,경제정책,소수민족에 대한 입장등이 모두 다른 정당끼리의 마찰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시크교 민병대의 대량학살 사건은 이같이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도정국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랄 수 있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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