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발생하자마자 댓글 지상파 10여분 뒤 자막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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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8시56분쯤 강원도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했다. 서울 대방동 기상청 상황판에 지역별 관측소에서 감지한 지진의 파장이 표시돼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20일 오후 8시56분51초, 기상청 국가 지진센터에서 상황 모니터를 주시하던 박상미 주무관의 눈에 크게 출렁이는 지진파가 들어왔다. 전국 40여 곳에 이르는 기상청 산하 지진감시망의 계측기 역시 심하게 흔들렸다. 한반도에서, 그것도 강원도 산속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포착된 지진파는 곧바로 기상청 분석시스템에 입력됐고, 컴퓨터는 분석 작업을 시작했다. 1분30초 뒤 기상청은 "강원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지진 속보를 언론사와 지자체 등 관련 기관에 보냈다.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빠진 '참고용'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반포동 아파트에서 TV를 보고 있던 안준수씨는 거실 마루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지진이 아닌지 궁금해진 안씨는 잠시 후 축구팬 동호회 사이트인 '사커라인'에 접속했다.

게시판에는 이미 오후 8시58분에 올라온 '서울 사는데 방금 지진 난 거 맞죠. 가슴 철렁거렸네 워'라는 글이 게재돼 있었다. 그 밑으로 전국적인 지진 체험 속보가 올라오고 있었다.

기상청의 계기 분석 결과가 나온 것은 오후 9시3분. 강릉 서쪽 23㎞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곧바로 소방방재청.언론사 등에 통보됐다. 방송사에 자막방송을 요청하는 문구도 포함됐다. 지진 사실을 확인한 소방방재청도 오후 9시5분부터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을 통해 재난 관련 기관들에 통보했다.

지진이 난 지 12분 뒤인 오후 9시8분부터였다. SBS.KBS2 화면 밑에 '강원 지역 지진 발생' 이라는 자막이 떳다.

이어 오후 9시11분쯤 연합뉴스와 뉴시스 등 통신사의 한 줄짜리 속보가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생생한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에 산다는 한 네티즌(soridia)은 '8시58분… 앉아서 컴퓨터 하는 도중, 모니터 흔들흔들거리고 지진 감지…'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어 기사 밑으로 '인천인데요…. 저도 지진 느꼈습니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aloha1217)와 같은 내용의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댓글 중에는 '건물이 무너질 때 가장 강한 엘리베이터 옆으로 뛰어라' 같은 행동요령이나 '요즘 짓는 건물들은 최소한 내진설계는 하는 걸로 안다' 등 피해 가능성에 대해 짧지만 논쟁적인 글도 포함됐다.

댓글 개수가 쑥쑥 불어나던 오후 9시11분 지상파인 KBS가 1TV 뉴스의 앵커 멘트를 통해 지진 발생 사실을 알렸다. 1분 뒤 강원 지역 주민들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찍히기 시작했다. '지진이 발생했으니 당황하지 말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몰라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첫 지진 발생지에서 오후 9시28분까지 세 차례의 여진이 추가로 발생했다. 모두 규모 1.6 이하로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를 분석한 기상청과 소방방재청은 더 이상 큰 피해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후 9시43분 소방방재청은 '여진 우려가 적으니 안심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상황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 시간, 인터넷에서는 오히려 뜨거운 설전이 시작됐다. 오후 9시48분쯤 네이버와 다음의 토론 코너에는 '지진, 한반도는 안전한가' '지진 강도는 어떻게 측정하나' 등의 토론방이 개설됐다. 언제 구했는지 장문의 논문까지 곁들이 토론글이 밤새 올라왔다. 인터넷 카페 등에는 회원들끼리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 등이 빠르게 전파됐다.

최현철·장정훈·하현옥 기자<chdck@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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