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멀리보고 키워야 합니다』 펴낸 이시형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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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려병원 정신신경과장 이시형 박사가 최근 자녀교육론을 담은 책『크게 멀리보고 키워야 합니다』를 펴냈다.
『사라져 가는 부권의 부활이야말로 핵가족의 역기능을 교정하고 비틀거리는 자녀교육을 바로잡는 지름길임을 일깨우려 했습니다.』
어쩌면 문외한일수도 있는 정신과의사가 1년여에 걸쳐 일종의 자녀교육론을 쓰게 된 동기다.
『문제아 부모의 특징은 말(잔소리)이 많다는 겁니다. 학업성적이란 하나의 잣대만 가지고 아이들을 재단하다 보니「열등생 아닌 열등생」을 양산하게 되는 거죠.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철학이 없기 때문인데 특히 엄마들이 근시안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당초에는「아버지 학」을 쓰려했으나 결국「엄마 학」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강하면 아이가 일시 방황하더라도 결국 되돌아옵니다. 강한 아버지란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지켜 가는 아버지를 말합니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부모들은 낡은 가치관을 주입하려 하고, 내 자식 사랑에만 빠져 한 사람의 바람직한 시민으로 키우기는 커녕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이만 양산한다. 이런 아이들은 따뜻한 마음이 없어 자라서도 각분야의 리더가 되지 못한다.
아이들의 개성이나 능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요즘 아이들」은 버릇없고 자율성도 없으면서 나약합니다. 모든 걸 다 갖춘 환경에서 이처럼 나약한 아이들이 나오는 것은 사회·학교·가정이 병들었기 때문이지요. 사회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요동하고, 학교는 입시위주의 교육이 전부입니다. 아버지는 실종되고 엄마는 과잉 상태지요.
전통적인 엄부자모의 틀이 깨져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위상이 재정립돼야 합니다. 엄마는 앉고 아버지가 대신 일어서야 합니다.
-요즘 한국 아버지의 문제점은.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이 한때 크게 유행했습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더욱 신봉하지요. 그래서 모두들「사탕아버지」가 되고 부드럽고 인기 있는 아버지가 이상형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이 방법은 지금 미국에서도 맹렬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이 2등국으로 전락한 원인을 여기에다 돌리려는 학자도 있어요. 최근에는 그 반발로「엄격한 부모회」가 전국적으로 조직되고 있습니다.
-한국 엄마의 문제점은.
▲한국 엄마의 소원은 하나같이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엄마는 아이가 천재이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자기 실현에는 세가지가 있어요. 일, 섹스, 그리고 아이. 남편과의 사이가 멀고 하는 일이 없는 엄마일수록 남는 것은 오직 아이뿐입니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성적-성공-행복」이란 공식이 환상임을 깨달아야 해요. 그냥 두면 평균작은 될 것을 과잉기대 때문에 낙오자로 만드는 엄마들이 의외로 많아요.
-대학 입학 후가 더 중요하다는데.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방황하든, 좌절하든, 방종으로 치닫든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이해와 도움이 정녕 필요한 것은 오히려 대학입학 이후부터지요. 중·고등학교 때의 반만이라도 정성을 쏟으라고 하고싶군요.
대학 문나서기 전에 자기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교수한 분만이라도 만나게 해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수 있습니다. 그 교수는 평생을 통해 좋은 조력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라고 간섭하고싶거든 대학에서부터 하라고 강권하고 싶군요.<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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