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제의」 위한 상징적 조치/불 핵확산금지조약 가입 배경(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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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의 2중성에 강한 불만/핵보유 상태에는 별다른 변화없어/NPT 가맹국 143개국으로 늘어
프랑스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의사를 공식천명함으로써 전세계 NPT 가맹국 수는 모두 1백43개국으로 늘어나게 됐다.
핵무기보유국의 하나이면서도 그동안 일관되게 NPT 불가입노선을 견지해온 프랑스는 지난 3일 세계 모든 나라를 향해 광범위한 군축제안을 내놓는 것과 때를 같이해 NPT에 가입하겠다고 밝혔다.
NPT조약이 처음 서명되던 68년 당시 세계 핵무기보유국은 미국·소련·프랑스·영국·중국 등 다섯나라였다. 이들 핵보유국 가운데 중국은 미소의 핵패권주의를 비난하면서 조약의 서명을 거부했다. 프랑스는 외교·국방 독자노선을 거부명분으로 내세웠다.
당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이 조약을 발아기에 있는 프랑스의 핵무기개발능력을 억제하려는 미소의 음모로 인식,NPT가입을 완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핵무기에 관한 프랑스의 드골주의적 전통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자체보유 핵무기를 독자방위의 핵심으로 하는 프랑스 국가방위개념은 사회당출신의 미테랑 정권하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NPT가입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핵보유상태에 즉각적인 변화가 초래되지는 않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조약의 발효시점인 지난 76년 이후 프랑스는 비록 미가맹국이면서도 사실상 이 조약의 규정을 따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NPT 가입의사표시는 다분히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이번에 내놓은 광범위한 군축제안에 나름대로의 무게를 싣기 위한 가벼운 노선전환정도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화학무기의 전면폐기 ▲생물학무기의 생산금지 ▲핵무기보유수준의 대폭축소 ▲미사일 발사기술의 이전규제 ▲재래식무기의 수출통제 등 다섯가지 사항을 골자로 하는 전면적인 군축안을 제시하면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회의를 파리에서 열자고 제의했다.
프랑스가 이러한 제안을 내놓게된 배경에는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군축문제에 관련한 미국의 이중성에 대한 경계와 불만이 그중 한가지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걸프전 이후 중동의 항구적 평화정착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부시 행정부는 최근 중동지역에 대한 집단적 무기수출 통제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나온지 채 사흘도 안가 10대의 F­15전투기가 부시 행정부에 의해 이스라엘에 공급된 사실등을 거론하면서 다른 나라의 손발을 묶어놓고 미국 혼자서 무기시장을 독식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노골적인 불만이 프랑스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게 사실이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의 하나이면서도 그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을 못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현실인식 또한 미테랑 대통령이 이같은 군축제안을 내놓게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다간 독일과 일본에 밀려 안보리 상임이사국자리까지 내놓게 되는게 아니냐는 성급한 우려마저 프랑스 국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과거 20여년간 유지해온 NPT 불가입노선을 수정,이 조약에 대한 서명을 눈앞에 두게 됐다. 프랑스가 이 조약에 가입한다고 해서 사실상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하더라도 미소간의 제2라운드 핵무기 감축협상 개시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그 상징적 효과가 없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로써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중 NPT 미가맹국으로 유일하게 중국만 남게 됐다. 그러나 당초 핵무기보유국 5개국과 미보유국간의 제조기술 이전을 차단할 목적으로 성립된 것이 NPT였음에도 불구,현재 세계 핵무기보유국은 미소 등 5개국을 포함해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남아공 등 모두 9개국으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도등 이들 4개국은 모두 NPT 미가맹국들이다.
이밖에 북한을 비롯,알제리·이라크·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다섯 나라는 현재 핵무기개발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중 특히 북한이 NPT 가맹국이라는 사실은 NPT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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