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내 영화 찾는 3만명 위해 컴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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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 영화계 은퇴 선언, '괴물' 독과점 비판 및 폄하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김기덕(47)감독이 14번째 영화 '숨'의 제작 현장을 공개했다. 1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촬영 현장에는 5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충무로 이단아'를 자처해온 김 감독 영화의 촬영 현장이 주요 언론에 대규모로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해외에서의 선전(善戰)과 달리 국내 개봉이 어려움을 겪자 "더 이상 한국에서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은퇴를 선언했던 그다. 김 감독은 이날"발언 번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찾아와 준 3만 관객(13번째 영화 '시간'의 국내 관객 수)을 위해 새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숨'은 남편(하정우)의 외도에 절망한 여자(박지아)가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사형수(장첸)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와호장룡'의 세계적인 대만 스타 장첸이 처음 한국 영화에 출연한다. 하정우는 '시간', 박지아는 '해안선' 등 3편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들이다. 김 감독은 "나를 믿고 이해하는 배우들이라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날은 감옥에서 세 남녀가 만나는 판타지 장면(사진)을 촬영했다.

[사진=김성룡 기자]

영화는 총 제작비 2억5000만원의 초저예산 영화다. 김 감독은 전작들의 해외 판매 수익금과 '숨'의 해외 사전 판매액으로 제작비를 충당했다고 밝혔다. '은퇴선언'후 선보인 '시간'은 해외 자본으로 찍어 국내 역수입하는 방식으로 개봉됐다. 당시 감독은 20만 관객을 기대했으나 스코어는 3만여명에 그쳤다. 김 감독은 "'숨' 역시 한국에 수출한다고 생각한다"며 "내 영화의 전세계 관객 중 한국 관객은 10~20%다. 한국은 여전히 내 영화 수출대상국의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비록 3만명이지만 내게는 1000만 못지 않게 소중한, 최고의 관객이다. 수입사나 나나 손해를 입지 않았다는 결과도 중요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때마침 작은 영화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 자포자기하기보다는 신작을 통해 저예산.예술영화의 시장 확대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도 피력했다. "너무 자주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앞으로 세 번은 더 말을 바꿀 것"이라는 농담으로 웃음을 유도했다.

강하게 비판했던'괴물'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도 발언 수위를 낮췄다. "멀티플렉스가 문제의 근원은 아니며 할리우드식 와이드릴리즈를 무조건 탓할 수도 없다. 단, 평균 50억원대로 급상승한 제작비는 20억원대로 떨어져야 하고, 대학에서 예술영화 공부하고 나오자마자 하루아침에 상업 영화로 함몰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가난하게 전투하는 나같이 이들이 꾸준히 나와 거대영화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위한 "꾸준한 국가지원의 확대, 예술영화 상영공간의 확보"도 거듭 강조했다.

'숨'은 '나쁜 남자''빈 집' 등을 감옥에서 찍으면서 구상해두었던, 감옥 배경 영화다. 80% 가량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촬영했다. 형 집행을 앞둔 사형수가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자 이를 TV뉴스로 본 여자가 무작정 감옥으로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얘기다. 제목인 '숨'은 "내쉼과 들이쉼, 음과 양, 밤과 낮, 결국은 인생이라는 테마"를 담고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빨리 찍기 스타일로 완성됐다. 지난 연말 시나리오를 탈고했고 이달 5-19일 총 14일, 10회차 촬영으로 제작을 마쳤다.

3년 전 베를린영화제에서 김 감독을 만난 후 열혈팬이 됐다는 장첸은 낮은 개런티를 기꺼이 감수했다. 말 못하는 사형수로 설정된 그는 "대사 없이 인물을 표현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며 "예상할 수 없는 스타일의 연출이라 현장에서 배우가 많은 도전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김 감독 영화는 시나리오가 다르고, 현장이 다르고, 극장에 걸리는 영화가 다르다"며 흥미로워 했다.

하정우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 경기를 하는 흥분감이, 배우로서 김감독 영화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숨'은 여름 국내 개봉 예정이다.

양성희 기자shy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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