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무한경쟁시대의 자동차 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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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GM과 포드는 이처럼 손발을 자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성장시장인 중국.인도에서는 공격적 투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포드는 중국 난징(南京)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으며, 중국시장에서 소형차를 석권하고 있는 GM도 중국 고급차시장 확대에 맞춰 내년에 캐딜락 SLS를 출시하기로 했다. 중국시장 공략에 사운을 건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일본 업체들은 중국.인도에서 선발 주자인 현대차를 따라잡는다는 복안이다. 중국에서 도요타는 주력 모델인 캠리의 신모델을 미국시장과 거의 동시에 출시했다. 도요타는 2010년까지 중국에서 생산능력 100만 대, 딜러 1000개를 확보해 현재 5%대인 시장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인도에서는 더욱 공격적이다. 인도 자동차시장에서 현대차는 18.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2위에 올라 있다. 반면 혼다는 4위(5.4%), 도요타는 8위(1.2%)에 불과하다. 도요타와 혼다는 인도에서 현대차를 따라잡겠다며 벼르고 있다. 도요타는 2009년 가동에 들어가는 현지 공장에서 연간 15만 대의 신형 소형차를 생산하고 신형 코롤라와 소형차 야리스를 투입해 인도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혼다 역시 2009년에 완공을 목표로 연간 생산능력 20만 대의 2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체의 폭발적 성장도 현대차에는 위협적이다. 지난해 중국의 자동차 수출은 34만 대로 전년의 두 배를 기록했다. 이제 중국 업체들은 해외시장 공략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장링 자동차에서 만든 SUV 랜드윈드는 유럽에 진출한 지 이미 1년이 넘었으며, 이탈리아 명품 디자이너 피니파리나가 디자인한 치루이자동차의 M14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시판될 예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개도국이 자동차산업 육성을 추진했지만 자동차공업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제 자동차산업은 단일품목으로 6년 연속 수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우리 경제의 핵심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 자동차산업은 원화가치 상승, 일본의 견제 및 중국의 추격, 미국 업체의 부활이라는 3중고 속에 생사의 기로에 섰다. 국내시장에서도 국산차가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반면 수입차는 폭발적인 판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전처럼 국내 소비자들의 애국심에 기댈 수도 없고, 더 이상 정부가 나서서 보호해 줄 방법도 없다. 오히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위한 협상카드로 자동차 부문 양보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업계가 살아남는 길은 가격과 품질 면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다양한 소비자 입맛에 맞는 신차를 개발하고, 하이브리드차.연료전지차 등 차세대 자동차의 개발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연구개발(R&D)비가 필요하지만 경쟁 심화로 안정적인 수익모델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에서의 경쟁은 자연보다 더 냉엄한 적자생존의 시장논리가 지배한다. 한마디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우리 자동차업계가 이 경쟁에서 낙오하면 세계 자동차 역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툭하면 파업에 나서는 현대차 노조의 무신경과 무모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안수웅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