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임 영(영화평론가)|이태원-84년「태흥」설립 18편 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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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영화시장의 연간 총매출액은 약1천5백억원으로 본다. 외화 매출액은 약1천50억원. 방화대 외화점유율은 대략 30%대 70%로 보고있다. 요즈음 부쩍 대두한 비디오 시장은 1천억 원을 넘어섰다고 본다. 비디오 시장이 방화시장을 이미 상회하고 외화시장을 곧 따라잡을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요새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영화사는 약 1백개. 한국영화의 최근 연간생산량은 약 1백편.이 숫자는 1백개 영화사가 1년에 1편씩 만들어 1백편이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영화는 의욕을 가진 사람들은 만들지만 장삿속으로 영화사를 차린 사람들은 그저 싼 외화를 들여다 요행수로 히트나 할까 꿈속에 사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것은 어쩌다 가능하다. 이상한 춤 영화가 정신없이 히트해 충무로 바닥 4층 건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영화속에 묘사되는 백일몽의 영역에 속한다. 세상이 어디 그렇게 어수룩한가. 따라서 계산 빠른 제작자들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절대로 제작을 안한다. 돈 써서 만들어내 봤자 밑질 것이 뻔한 제작을 왜 하겠는가.
특히 군사정권의 따뜻한 온상에서 통합이라는 미명아래 돼지우리 같은 독과점의 테두리 속에서 사육되어 비만해진 이른바 대제작자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해 볼만도 하지만 이미 모아놓은 돈을 모험으로 축내기도 싫고, 해볼 의욕도 없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도 안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 제작하고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영화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정열을 가지고 부단히 도전하는 끈기의 제작자·감독들인 것이다. 또한 그들 중엔 기술적으로는 미숙하지만 오직 정열 하나만으로 자비출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와 차세대 영화계를 이끌어갈 영웅들이라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이러한 불도저식으로 마구 밀고 나가는 제작자들 중에 별로 젊다고 할 수도 없는 이태원(1936년생)이 있다. 그는 지난 7년 동안 18편을 만들어냈으며 지금 2편을 촬영중이고 다른 2편을 준비중에 있다.
이태원이 84년 태흥영화사를 차리고 제작, 개봉한 영화중 흥행이 가장 안된 영화는『장남』(85년·이두용감독)으로 단성사에서 14일간 2천81명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흥행이 안된 영화로는『오세암』(90년·박철수감독)으로 역시 단성사에서 11일간 1만1천9백53명이 들었 다.
『장남』이 하루 1백50명 든 꼴이고 보면 『오세암』은 하루 1천명은 든 셈이어서 좀 나은 편이었을까. 흥행 안된 랭킹 3위로는『꿈』(90년·배창호감독)이 서울극장에서 27일간 2만8천1백7명으로 역시 하루 1천명 꼴이다. 이 흥행최악의 영화들의 감독들은 모두가 다 한국의 내노라하는 이두용·박철수·배창호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작비가 수억원씩 든 것도 사실이다.
한국영화 흥행의 에누리없는 현실이 이러할진대 이른바 호명뿐의 대제작자(?)들이 굼벵이처럼 기우뚱거리고 있는 것도 이해해줘야 할지.
그러나 이태원은 이러한 흥행 참패의 KO펀치를 심심치않게 얻어맞으면서도 껄껄대고 웃는다. 그가 웃을 수 있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가 기획·제작한『장군의 아들』(90년·임권택감독)은 단성사에서 1백76일간 67만명 이상이 들어 흥행기록 경신을 하는 쾌거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가 제작한 흥행 잘된 영화 2위는『어우동』(85년·이장호감독)의 48만명, 3위는 역시 이장호의『무릎과 무릎사이』(83년)의 26만3천명, 4위가『청춘스케치』(87년·이규형감독)의 26만명 등으로 되어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자신이 제작한 한국영화 18편의 평균 관객입장 수는 17만명. 한편에 평균관객 17만 명이라면 이것은 현시점에선 대단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이태원이 건축업하다 영화에 손댄 것은 우연 때문이었다. 74년 은행으로 넘어가게 된 친구의 채무를 맡는 물건 중에 극장이 하나 있었다. 10년쯤 극장경영을 부업 삼아 하다보니 역시 채무로 넘어가게 된 태창영화사(미국이민간 제작자 김태수 것)를 인수, 84년에 제작 시작을 하게된 것이다. 태흥이라는 이름은 건축업 할 때 쓰던 옥호. 【임 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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