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가려 미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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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늘 아침 미국에 사는 이모가 뉴욕으로 되돌아갔다. 15년만의 귀향. 국민학교 선생님이던 이모가 어린 남매의 손목을 잡고 이민을 떠날 때 작은 계집아이였던 나는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정말 긴 시간이 흐른 후의 만남이었다.
재주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가능성의 나라 미국을 꿈꾸며 떠나던 때, 그 힘들다는 미국에 이민가는 그 이들을 무조건 부러워하던 어른들처럼 나도 덩달아 가슴이 설랬던 기억이 난다.
친척들은 그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편지 왕래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법한 미국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이모는 조금씩 성공과 고생의 체험담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모의 이야기 속에서 성공과 안정에 대견해 할 뿐「잘사는 나라」에 대한 동경심을 느낄 수는 없었다.
올 봄에 팔았다는 미국의 30만달러짜리 빌딩은 따져보니 우리나라 강남의 30평형 아파트 한채 값에 채 못 미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화장품·코피·양주 등 옛날에는 귀하던 외제들이 요즘은 더 질 좋은 국산품으로 대체 돼 쏟아져 나오니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미국처럼 우리도 잘 살게 되었다는 뿌듯함마저 새삼 느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은 아이들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은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지. 그러다 싫증나면 다른 길을 찾고 말이야. 한국 애들이야 모두 공부를 잘하니까….』
명문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한 사촌의 빛나는 성공담을 듣고 그날 모인 부모들은 꽤나 애간장을 태웠음에 틀림없다.
미국 이모가 돌아갈 날을 며칠 앞두었던 날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또 다른 이모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어쩌겠어 여기에서는 대학에 붙을 가능성이 안보이고, 대학에 못 가면 사람 취급을 안하니….』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에 빠져「프로그래밍의 귀신」이란 별명을 얻은 고교 1년생이 학벌을 절대시하는 풍토에 떠밀려 낯선 땅에서 힘든 적응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미국에 대한 물질적 동경이 웬만큼 현실로 이루어진 지금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또 다시 미국에 저당 잡힌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앞으로 15년이 지나 내 아이가 컸을 때는 대학을 가고 못 가고를 떠나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풍토가 자리잡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백경희<서울 도봉구 도봉2동 87삼환아파트 3동1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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