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첫 골 박지성 '부족한 2%'채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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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빌라 전에서 시즌 첫 골을 터뜨린 박지성이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고 있다.[맨체스터 AP=연합뉴스]

박지성 선수가 부상에서 회복한 뒤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습니다. 마무리가 부족하다, 첫 터치가 안 된다(동료 패스를 받을 때 발동작이 뻣뻣해 다음 연결이 부정확하다는 말)는 등 비판적인 언론 보도도 잇따랐습니다.

잉글랜드의 박지성 선수에 대한 평가는 정말 냉정하지요. 시즌 첫 골에 어시스트까지 기록한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매주 토요일 프리미어리그 하이라이트를 다루는 TV프로인 'match of the day'(오늘의 경기) 패널로 나온 마크 로렌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분석하면서 박지성보다는 두 번째 골을 넣은 마이클 캐릭에 집중하더군요. 캐릭이 골을 넣는 장면과 세 번째 골을 크로스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더라고요. 우리 눈에는 첫 골을 넣고,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고, 세 번째 골의 출발이 되는 인터셉트를 한 박지성의 공에 대한 집념과 압박이 핵심으로 보였는데.

평소 훈련 외에는 집에서 잘 안 나간다는 박지성 선수. 이런저런 기사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오늘 활약으로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졌을 것 같네요.

박지성 선수의 맹활약으로 한국에선 또 박지성 바람이 불겠지요. 한국 선수가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주축 선수로 뛰는 건 대단한 일이지요. 하지만 좀 진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골에 너무 들뜰 필요도 없고, 또 아무 성과가 없어 보이는 경기라 해도 묵묵히 격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경기장에서 지켜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TV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지성 선수가 움직이며 공간을 창출하는 것, 이런 능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상위라고 생각해요. 2010년까지 맨U와 계약을 했다는 것은 최고의 명장 퍼거슨 감독이 박 선수의 실력,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평가했다는 것이니까요.

제가 2000년도에 리버풀에 잠시 머물렀을 때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우리나라 선수가 과연 이 거칠고 빠른 리그에서 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체격.몸싸움.개인기.스피드 등등….

하지만 서양 선수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박지성 선수가 일본.네덜란드에서 온갖 시련을 딛고 맨U에서 활약하는 것은 진정 '꿈은 이루어진다'를 보여 주는 장면이지요. 긱스.루니.호날두와 같이 달리는 박지성을 볼 때마다 저는 이게 현실인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매일이다시피 오는 비, 변덕스러운 날씨, 오후 4시면 어두워지는 이곳의 겨울,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이질적인 문화 등 축구 외적인 요소들도 잘 극복하고 온 국민의 인기 스타가 된 박지성 선수. 그가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만큼 우리도 묵묵히 박 선수의 도전, 성장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홍은아 <러프버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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