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투자 계획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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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산업자원부는 하이닉스반도체의 경기도 이천공장 증설 문제에 대한 정부 방침 발표시기를 늦추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산자부 이재훈 산업정책본부장(차관보)은 이날 "일주일 전쯤 하이닉스 측에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에 투자계획 변경 의사를 전해왔다"며 "이에 따라 이달 중순께로 예정됐던 발표 시점을 불가피하게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투자의 중요성을 감안해 변경 투자계획이 제출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추가 검토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정부에 제출했던 13조5000억원 규모의 이천공장 투자 계획을 새로 고쳐 제출키로 했다. 정부가 환경오염 방지와 국토균형개발 논리를 내세우며 이천공장 증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정부는 하이닉스 측이 1년 전부터 요청한 이천공장 증설 문제를 수도권 집중 해소 등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며 질질 끌어왔다. 그러다 재정경제부와 산자부는 지난해 하반기 공장 증설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나타내면서 하이닉스 측이 계획서를 공식으로 제출하면 곧바로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12월 13일 계획서를 산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4일 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수도권 내 공장 증설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에서는 공장을 짓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궁색해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과 환경 문제라는 해묵은 논리를 내세워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 본부장은 이날 "이천 지역이 수도권 2300만 명의 상수원이라 수질 보호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태스크포스 내에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그동안 "최첨단의 환경설비를 갖추고 있어 환경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그럼에도 하이닉스는 정부 입장을 고려해 이천공장 증설 규모를 줄이면서 충북 청주 공장에 대한 투자 계획을 추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유부단한 정부 때문에 지역 갈등까지=김문수 경기지사와 열린우리당 김진표.윤호중 의원, 한나라당 남경필.이규택 의원 등은 이날 간담회를 열고 "이천 하이닉스 공장 증설은 국가적 과제로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루 전에는 이천시와 규제철폐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이천공설운동장에서 시민 1만여 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범대위는 "기업이 투자하겠다는데 이를 막는 정부가 세상 어디에 있느냐"며 "13조여원의 설비투자와 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하이닉스 공장 증설이 관철될 때까지 강력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하이닉스의 청주공장 유치를 추진했던 청주 시민들도 정부의 빠른 결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15일 할 계획이다. 정부의 눈치보기 때문에 지역 갈등까지 빚어질 상황이다.

이날 청와대와 산자부.환경부 등 정부부처 홈페이지에는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요구하며 정부를 성토하는 글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김동호.김창우 기자, 이천=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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