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상여 탄 '상주 누렁이 소' 잘해 주던 할머니 숨지자 눈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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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시민들이 ‘의로운 소’를 꽃상여에 태우고 무덤으로 향하고 있다.[상주시청 제공]

12일 오후 1시 경북 상주시 사벌면 상주박물관 옆 야산. 소 달구지가 끄는 꽃상여가 올라왔다. 곧이어 박물관 앞 광장에선 이정백 상주시장과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영결식이 열렸다. '망자'의 약력 소개에 이어 명복을 비는 묵념이 이어졌다.

이날 장례식의 주인공은 상주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준 '의로운 소' 누렁이. 11일 숨진 암소 누렁이가 유명해진 것은 14년 전 자신을 아껴 준 이웃집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정을 못 잊어 묘소와 빈소를 찾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1993년 5월 23일 이 소를 기르던 임봉선(72.사벌면 묵상리)씨는 외양간에 있던 누렁이가 고삐가 풀린 채 없어져 깜짝 놀랐다. 수소문 끝에 소를 찾은 곳은 뜻밖에도 전날 장례를 치른 옆집 김보배(당시 85세) 할머니의 묘소. 그곳은 외양간과 2㎞나 떨어진 데다 수풀이 우거져 주민들도 접근하기 힘든 장소였다. 누렁이는 묘소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소를 달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한번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누렁이는 외양간으로 가지 않고 김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한참 서성거렸다. 당시 상주였던 서창호(78)씨는 어머니의 삼우제를 마친 뒤 누렁이를 찾아 막걸리 2병과 두부 3모 등을 먹이면서 문상객처럼 대하는 예를 갖추었다. 누렁이를 기른 임씨는 "김 할머니는 생전에 틈만 나면 외양간과 맞붙은 길목에 나와 누렁이를 쓰다듬으며 먹이를 주었다"며 "소가 그 고마움 때문에 할머니를 못 잊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씨 등은 이듬해 마을회관 앞에 '의로운 소' 비석을 세웠고, 이후 동화책으로 누렁이 이야기가 알려졌다.

상주=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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