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투정치에 대한 여야의 책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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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경대군의 죽음이 몰고올 20여일간의 폭풍같은 소요가 한 고비를 넘고 있다. 어렵게 장례를 치른 강군의 명복을 빌면서 이제 강군 치사가 던져준 교훈을 차분히 현실에 용해할 때라고 생각한다.
강군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각계에서 여러가지 방향의 후속조치와 노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치사정국의 동인에서 차지하는 이른바 공안정치의 비중이나 현재 야당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군중집회의 성격을 감안할때 정치권의 책임을 좀더 무게있게 추급해야 하리라 믿는다.
말할 것도 없이 치사정국의 1차적 마무리는 정부·여당의 생산적인 대안제시와 진지한 실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여당은 꺼져가던 과격운동권의 결집력이 다소나마 힘을 얻을 수 있게 한 일부 국민의 지지와 다수 국민의 방관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살펴 이에 맞는 후속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민생·물가·주택문제 등에 가시적인 의지표명이 있어야 함은 물론,우선 흐트러진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이 잇따라야 한다. 국민의 최소요구라고도 할 수 있는 내각사퇴문제에 회답이 빨리 나와야 하고 보안법 개정의 진취적 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가 나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여당 못지 않게 야당에도 국민불안을 어루만질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시작된 신민·민주당의 장외투쟁에 유감과 고언을 표하고자 한다.
두 야당은 군중집회에서 사실상 6월 광역의회 선거의 유세전을 시작한 느낌을 주었다. 명분은 강군 치사사건 규탄에 두었지만 김대중·이기택 총재의 연설은 자당의 지지호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치사정국을 지자제선거의 득표에 연결시키려는 저의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김대중 총재는 정권퇴진투쟁을 않겠다면서도 해결책을 당면대책과 근본대책으로 구분해 어디에 체중이 실렸는지 모호하게 말했다. 즉 노재봉 내각사퇴는 당면대책이요,노태우 대통령의 내각제 포기선언·거국내각 구성은 근본대책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이중전술이 김총재나 신민당에 줄 이해타산을 장기적으로 따져 보았으면 한다.
이기택 총재의 연설 역시 비논리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제도에 따라 지자제에 참여하면서 비합헌적인 대통령퇴진·민자당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 불가능한 것을 될듯이 말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며 책임있는 정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신민·민주당은 정부의 실정을 놓고 국민의 지지폭을 넓히는 것이 야당의 속성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책임있는 정치일 수 없다고 본다.
선거란 법이 보장한 당정간의 게임이다.
게임은 게임답게 룰에 따라 정식 선언하고 하는 것이 정도다. 더구나 한 대학생의 불행한 죽음이 결과적으로는 선거에 작용될 수는 있을지언정 정당이 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여야는 길을 두고 뫼로 가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길은 어디에 있는가. 각기 국민의 공분을 최대한 수렴한 바탕위에서 먼저 난국을 국민적 차원에서 수습하는 일에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래 놓고 방법상 다툼이 있는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 물론 대화는 정치를 법과 질서로만 파악하려는 여권의 공안시각과,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민과 재야에 각각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야당의 이중성이 수정되어야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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