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시국수습 수순찾기 나섰다/여 노내각 사퇴요구로 새 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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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야에 밀리는 인상 우려 시기조정/경제각료등 포함 대폭 개각 예상도
민자당당무회의에서 내각사퇴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된 후 노재봉 내각개편등 여권의 수습방향이 크게 주목되고 있다.
청와대측은 재야나 야권의 요구에 떼밀려 국무총리가 물러났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부심하고 있는데 재야의 시위가 가라앉은후에 노태우 대통령 주도의 국정쇄신책이 잇따라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유력해지고 있다.
▷청와대◁
○…시국수습을 위한 일련의 구상을 가다듬어온 청와대는 민자당 당무회의에서 노재봉 내각 퇴진요구등이 제기돼 모양새를 그르친데 대해 불쾌한 기색들.
특히 노대통령이 16일 직접 손주환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은 체제전복세력을 억제해야 할때이지 내각을 개편할 때가 아니라는 지시를 해 청와대측 분위기는 경색.
노태우 대통령은 강군사건이후 민심수습책 마련을 고위참모들에게 은밀히 지시했고 여기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노내각개편,내각제개헌 포기를 명시화하는 내용을 담은 대국민담화문등 고단위처방들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여당이 앞뒤도 가늠 못한채 노총리 사퇴주장이나 들고 나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고위소식통은 『노 대통령이 대처할 복안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재야운동권도 아닌 여당의원들 마저 눈치 없이 나선다』고 불평.
소식통은 『체제전복을 꾀하는 극좌세력과 야권 및 일반의 목소리를 가려 대처해야 하는 것』이라며 『불순세력에 부화뇌동하는 그룹에 떼밀려 어떤 조치를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해 적어도 강군장례식 등이 치러지고 시위가 가라앉은 후가 될 것임을 시사.
○…청와대 관계자들의 「노내각 개편 불고려」의 강도는 15일의 민자당당무회의 소동 이후 현저하게 떨어진 느낌.
손주환 정무수석 등은 16일 『총리에게 시국책임을 물을 성질이 아니다』『체제전복 세력의 실체와 저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여전히 거부의지를 확인하고 있지만 당무회의 이후 약화된게 역력.
한편 청와대측은 국면반전을 위해 일련의 조치들을 구체화 시킬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번주중에는 여론수렴의 시간을 가질 예정.
노대통령은 16일 노총리와 단독면담을 가진데 이어 17일에는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과 회동. 또 17일중에는 고재필·현승종·양호민·손인실·김홍수씨등 각계 원로 6명을,18일에는 이철승·이민우·유치송·이만섭씨등 전직 야당 당수들을 청와대로 초청,시국수습을 위한 의견을 청취할 계획.
정가에서는 노대통령이 이러한 수순을 밟은후 내주중 각급 조치를 실행에 옮길 것으로 관측하고 있는데 개각이 이뤄질 경우 노총리 외에도 다수의 경제각료까지를 포함한 대폭인사가 될 것이라는 분석.
다만 여당개편을 개각과 동시에 단행하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여당쪽은 광역의회이후에 하는게 낫지않겠느냐는 시각도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당에 대한 대개편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어 주목.
▷총리실◁
○…16일 오후 노태우 대통령과 노재봉 총리와의 단독면담에서 노총리가 내각퇴진의사를 밝힐지 여부가 관심.
정부의 한 당국자는 16일 『매주 금요일 갖던 노대통령과 노총리의 독대가 하루 앞당겨진 것은 청와대의 일정 때문』이라고 전제,『오늘 독대에서 노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노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의 근거로 『노총리가 지난주 노대통령과의 독대당시 이미 「필요하다면 물러나겠다」고 사의를 밝혔으며 그후에도 청와대 참모진등 여러 채널을 통해 같은 뜻을 전달했다』고 전하고 따라서 이미 노총리의 뜻이 대통령에게 충분히 전해진 셈이라고 해석했다. 관계자는 또 사퇴문제는 청와대 의사에 따를 것이므로 그쪽 결정방식에 따르겠다는 것. 노총리의 한 측근은 『노총리자신은 여론의 화살을 받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대통령이 원하고 필요로하는 카드로 쓰여야 한다』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전했다.
한편 총리실관계자들은 15일 민자당당무회의에서 민정계중진들조차 노총리 내각사퇴주장이 나오자 어두운 표정들이었는데 노총리자신은 정작 이를 내색하지 않고 『행정부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말 것』을 지시하는 등 평소와 같은 자세를 유지.
▷민자당◁
○…민자당은 15일의 당무회의에서 노재봉 내각사퇴를 시국수습방안으로 공식 제기함으로써 노내각사퇴라는 뜨거운 감자는 일단 청와대로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청와대측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노내각사퇴의 불가피성은 당내외로부터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 뿐 아니라 시국불안을 해소하고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노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데 3계파가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김영삼 대표측의 노내각사퇴주장에 그동안 유보적 태도를 취해왔던 박태준 최고위원도 15일 낮 손주환 청와대정무수석과의 오찬회동을 통해 노내각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당측의 시각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박최고위원은 『시기에 대해선 여러의견이 있다』고 말해 노내각사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민자당은 이에 따라 16일 오후 노대통령­노재봉 총리의 주례면담과 17일 오후로 예정된 노대통령­김대표 정례회동에서 큰 가닥이 정리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언제 어떤 형태로 노내각사퇴가 이뤄지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내 일각에서는 집권여당인 민자당이 당무회의라는 공식기구를 통해 노내각사퇴를 정부측,특히 노대통령에 촉구함으로써 노대통령의 입지가 매우 옹색하게 됐으며 자칫 감정상의 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
지난주말 노·김대표회동에서 노대통령이 내각사퇴라는 말이 당내에서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김대표에게 특별주문한지 불과 며칠도 안된 상태에서 당이 노내각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했을뿐 아니라 노대통령이 실제로 내각사퇴카드를 적정시기에 사용하려 했다하더라도 당이 선수를 치고 나옴으로써 마치 어쩔 수 없이 떼밀려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국수습을 위해 노내각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전제할때 노대통령의 권위 실추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노총리가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이며 당지도부 역시 이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김대표측도 17일의 청와대회동에서 노내각사퇴와 획기적인 국정쇄신 필요성을 당의 의견으로 건의하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지난번 페놀방출사고 발생때 처럼 환경처장관경질을 당이 건의하고 노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것과 같은 수순을 밟는 방법을 건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현일·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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