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화학무기 보유 “쐐기”/미 화학무기 폐기선언 배경(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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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동평화 정착위해 필요한 조건/걸프전서 “필요없다” 교훈 얻어
부시 미 대통령이 화학무기의 전면적인 폐지를 촉구하며 미국이 솔선해 향후 10년내에 미국이 보유한 화학무기를 모두 폐기처분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국가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보복의 필요성 때문에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현재의 재고중 2%는 남겨놓겠다는 입장을 취해왔었다.
미국의 화학무기에 대한 이러한 유보적인 입장이 유엔 주도로 진행중인 화학무기 협정의 타결을 더디게 만들어온 원인의 하나였다. 이번 부시의 선언으로 23년을 끌어오던 이 협정이 새 전기를 맞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금년말까지 주요쟁점을 해소,늦어도 내년에는 협정이 타결되기를 희망한다는 일정까지 제시하고 있어 이대로만 된다면 금세기 말까지는 지구상에 화학무기가 모두 사라지게 된다.
미국이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어 보복용의 화학무기 조차도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부시는 『이 가공할만한 무기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철부지정권이 선량한 사람을 얼마든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걸프전의 교훈을 통해 모두 체험했다』면서 『걸프전이 화학무기가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나의 신념을 다시 한번 새롭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걸프전이후 중동지역 평화정착 방편의 하나로 이 지역에서 무기감축협정을 체결코자 하는 미국은 이스라엘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이에 대항해 아랍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가 협정체결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느껴왔다.
따라서 부시는 이스라엘의 핵무기와 아랍국가의 화학무기를 동시에 동결할 필요성을 느껴왔다.
이스라엘의 핵무기는 별도로 하더라도 아랍국가들이 보유한 화학무기는 화학무기협정이라는 테두리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의 체결이 현재로서는 막연해 우선 미국부터 결단을 내릴 필요성이 있었다.
뉴욕 타임스지는 부시의 이번 선언을 중동에서 핵무기·화학무기를 동시에 제거한다는 미국의 중동평화안과 결부시켜 보도하고 있다.
보복용 화학무기를 남기겠다는 미국의 지금까지의 입장이 장애가 되어 협정타결이 늦어지고 이를 기화로 화학무기 보유국가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이 수집한 정보로는 이란·에티오피아·이집트·중국·미얀마·인도·파키스탄 등이 화학무기를 갖고 있으나 공개치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리비아·북한·베트남·시리아·한국 등이 화학무기 보유 가능국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으로 하여금 이같이 화학무기의 보유를 전면 포기한다는 선언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미국이 더이상 화학무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걸프전을 겪으면서 화학무기의 가치를 다시한번 평가하는 계기를 갖게됐다.
미국은 화학무기의 사용을 위협하는 이라크에 재래식 무기로 충분히 대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경험에 비추어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큰 화학무기보다는 재래식의 첨단무기가 더 효과적임을 확인했다.
또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지력으로서 화학무기를 보유한다는 과거의 개념도 이번 전쟁을 통해 불필요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선언으로 앞으로 열리게 되는 미소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협의될 것으로 보이며 미국의 이러한 주도를 소련도 따라올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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