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입시제도 빨리 안 바꿔도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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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학 입시의 계절이 왔다. 올해도 수학능력시험을 잘못 치른 여학생이 자살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꽃다운 나이의 청춘을 죽음으로 내몰 만큼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잔인하기만 하다.

나는 몇 년 동안 대학입시 면접위원을 해왔는데, 극도로 긴장해 있는 수험생들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괴롭게 한다. 세 명의 면접위원 교수들의 집중적인 질문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며 답해야 하는 일은 거의 고문에 가깝다. 어떤 학생은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떨고, 또 어떤 학생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끝내 한 마디 말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학생들을 앞에 놓고 점수를 매겨야 하는 일이 차마 사람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마저 든다.

*** 시험 치르는 기계가 된 학생들

한 사람의 일생이 이런 짧은 시간의 시험에 좌우된다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모순에 가득차 있고 문제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시험 제도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또 여러 개선 방안이 제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매번 입시 제도를 바꿀 때마다 사정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현행 제도에 손을 대지만 얼마 후 새로운 문제점들이 제기된다. 그러면 다시 사람들이 입시 제도의 부작용에 대해 거론하고 또다시 개편안을 만든다. 이것이 여태 우리가 해온 일이다. 자료를 보니 해방 이후 현재까지 대학 입시제도의 큰 틀이 바뀐 것만 아홉번이다.

매번 제도 개선은 그 당시에 느끼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시행했던 것들이다. 족집게 과외를 없앤다는 목적으로 통합교과 출제를 했고, 사교육비를 절감한다고 수능시험 문제를 아주 쉽게 출제했고,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내신의 비중을 높였다. 아마 가능한 방안은 거의 다 시도해 보았음 직하다. 그러나 결국 과외는 더 성행하고 있고, 학교마다 자기 학교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거의 '사기행위'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쉬운 문제 내기 경쟁을 하고 있으며, 재학생보다는 졸업생의 성적이 높게 나오는 상황에서 재수.삼수가 빈번해지고 있다. 학생들은 너무나 큰 고생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시험 잘 보는 기계처럼 돼 정작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의 학력이 오히려 저하되지는 않았는지 우려된다. 또 한번 머리를 짜내어 열번째 입시 제도를 만든다 해도 이런 문제들이 시원스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들이 크다 보니 그냥 있을 수는 없어 뭔가 다시 제도를 바꾸겠다는 의도라면 차라리 그런 일은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전의 제도들이라고 모두 나라 망칠 생각으로 만들었을 리는 만무하고, 그 나름대로의 좋은 목표를 가지고 만들지 않았겠는가. 어떤 제도든 '작용'과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입시 제도의 경우를 보면 우선 '부작용'이 너무 커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원래 의도했던 '작용', 즉 소기의 목적에 맞는 효과가 조금씩 나올 무렵이면 조바심이 난 당국이 다시 제도를 바꾼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나 부작용의 쓴맛만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 눈앞의 문제점 너무 연연말라

교육을 두고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 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입시 제도를 포함해 교육과 관련된 제도를 정 바꾸려면 1백년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20~30년 정도는 두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당장 눈앞에 드러난 문제점을 그럭저럭 피해갈 궁리를 하기보다 큰 원칙을 확실히 지킨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교육을 통해 덕성을 키워주고, 인간의 능력을 한껏 키워주되, 다른 사람보다 '수학능력'이 떨어지더라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그런 고귀한 목표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방안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부탁건대 이번 정권 혹은 이번 장관 재임 중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우리 후손들이나마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장기적인 준비를 한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