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내부통로로 '통하는 집' 3세대가 따로 또 같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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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에 대비하려면 젊고 건강한 사람 위주로 조성된 주거 환경을 노인 눈높이에 맞도록 고쳐나가야 한다. 사진은 실버타운 '노블레스타워'의 모델하우스 모습. 여닫이문 대신 단 미닫이문, 안전손잡이가 설치된 화장실, 앉아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 등이 노인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 [사진=김경빈 기자]

'수명 100세'는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니다. 2030년이면 선진국 국민의 평균수명이 100세를 넘어설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지금 40대는 대부분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젠 노년이 인생의 '덤' 취급 받기엔 너무 긴 시간이 됐다. 노년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다. 장수가 고민이 아닌 축복이 되려면 젊은 핵가족 중심의 의식주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노인을 배려한 주생활.식생활.의생활을 차례로 짚어본다.

바깥 거동이 힘든 노인에게 집은 일터이자 휴식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거 형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는 젊은 핵가족용으로 설계됐다. 이제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만큼 집을 지을때부터 노인을 위한 설계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노인에게 적당한 집은 어떤 것일까. 27년 동안 노인주택을 연구해온 연세대 이연숙(53·사진·주거환경학) 교수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최근 자신의 연구 성과를 담은 저서 건강주택과 노인주택 디자인(이상 연세대 출판부)을 잇따라 펴냈다.

#독립적 동거가 가능하게

우선 이 교수는 "핵가족 위주인 기존 주택구조가 노인과 자녀 세대의 동거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이 거주하는 공간을 별도로 떼어내 만들기보다 기존 주택을 자연스럽게 고령 친화구조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대우건설의 용역을 받아 설계한 노인 주택은 3세대가 동거할 수 있는 63평형 아파트 구조다. 핵가족으로 떨어져 살 경우 자녀 세대가 36평형 아파트에, 노부모 세대가 27평형 아파트에 산다고 가정하고 이를 합친 넓이다.

<평면도 참조>

단순히 넓기만 하다고 3세대 동거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의 독립성. 각자 독립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활 영역을 2개로 나누고, 출입구와 부엌.화장실을 두 영역에 각각 갖춰 놓았다. 또 세대 간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 영역의 침실은 거실.식당 등 공동 공간을 가운데 놓고 분리돼 있다. 노인이 동거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친구나 친척을 부를 수 있고, 만약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동거 가족의 생활을 깨뜨리지 않는 구조다. 2개의 영역은 내부통로를 통해 서로 교류할 수 있다.

노인이 환자가 됐을 경우를 대비한 점도 눈에 띈다. 집 안 모든 바닥은 같은 높이로 만들어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다. 화장실 바닥도 같은 높이로 하고 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문 주변에 넓은 수채를 설치했다.

또 집안 내부 천장에 레일을 깔아두고 필요할 때 호이스트(hoist)를 달아 환자가 붙잡고 혼자 방과 화장실.거실 등을 오갈 수 있도록 했다.

노인과 동거하는 가족이 반드시 피붙이일 필요는 없다. 집의 한쪽 영역을 임대해 주고 임대료를 노후 생활비로 사용할 수도 있다. 내부 통로를 막아놓으면 두 가구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으며, 노인이 병이 들어 이웃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는 임대료를 낮춰 주고 위급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로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자녀와 떨어져 사는 노인들의 대표적인 고민 '내가 갑자기 쓰러지면 누가 날 발견해 도와줄 것인가'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콘센트는 높게, 싱크대는 낮게

집안 구조를 통째로 바꾸기는 어렵지만 내부 수리 과정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노인 생활에 편리한 주거환경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는 있다. 노화로 쇠퇴해진 신체 기능을 보완해 주고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방문 손잡이의 경우 둥근 형태는 노인이 조작하기 어려우므로 레버식으로 바꿔주는 것이 좋다. 콘센트 위치도 몸을 크게 구부려 사용하지 않도록 바닥에서 최소한 60㎝ 위에 설치한다. 문지방도 발에 걸려 넘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없앤다.

화장실은 집 안에서 안전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바닥에 미끄러지지 않은 재질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욕실의 모든 설비는 끝이 뾰족하거나 돌출된 부분이 없는 것으로 고른다. 욕조와 샤워실 안의 비누곽도 돌출돼 있지 않도록 한다. 또 변기 옆, 세면대 위, 욕조 옆 등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한다. 유사시 타월걸이나 세면기 등을 붙잡고 몸을 지탱할 수 있으므로 나사나 앵커 볼트 등을 사용해 고정한다.

주방 수납장의 높이가 160㎝보다 높으면 노인이 사용하는 데 위험하다. 싱크대 등 주방 작업대의 높이도 일반 표준높이 90㎝보다 낮은 81.5~85㎝가 적당하다. 노인이 되면서 허리가 굽고 키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거동이 불편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지고 누워 있는 시간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집 안 인테리어도 노인의 눈높이에서 점검해본다. 빨래가 차지하고 있던 베란다에 실내 정원을 설치하고, 침대 위 천장에 그림을 붙여놓는 것도 노인을 배려한 아이디어 중 하나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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