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어 군사 용어 많아 "섬 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남북한간의 언어 이질화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번 41회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 단일팀 훈련과정에서도 가장 큰 고민거리가 탁구용어의 장벽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래어 투 성이 인 반면 북한은 우리 말 화 된 신조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선 먼저 언어장벽을 허무는 일부터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통일의 디딤돌이며 통일이 되었을 때도 이질적인 의식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많은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로동신문·평양신문·민주조선·근로자·천리마 등 북한의 신문·잡지를 통해 북한언어의 특집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북한은 66년부터 서울말을 기초로 하는 표준어에 상응하는 것으로 평양 말을 토대로「문화어」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어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동안「문화어」의 형태로 다듬은 어휘는 모두 5만여 개.
이「말 다듬기 사업」은▲한자어는 한글 고유어로 대체하고 고유어가 없을 때에는「풀이말」로 쓰며 ▲외래어 역시 고유어로 대체하며 ▲정치용어는 사상교육에 활용키 위해 한자어라 할지라도 수정을 금지하며 ▲과학기술 용어 및 대중화된 한자어·외래어는 그대로 사용한다는 기본방침아래 실시돼 왔다.
북한의 이같은 문화어 정책은 우리 말을 갈고 지키려는 주체성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뜻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휘의 정리·유포과정이 당에 의해 일원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당의 정책구현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됨에 따라 언어의 자연성이 파괴되고 어휘의 활용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북한의 신문·잡지에 나타난 문어체의 특징은 대체로 다음의 여섯 가지로 분류된다.
◇군사용어의 일상화=「2백일 전투」「영농전투」「물고기 잡 이 전투」「정어리 잡 이 전투」「모내기 전투」등 우리의 인식으로는 전투가 아닌 물고기 잡 이·영농·모내기 등 이 모두「전투」로 표현되고 있다.
또「공화국창건 42돌 전」「속도 전「섬멸전」전쟁 개념의 용어를 상용하고 있으며「갱목 생산 투쟁」「알곡증산 투쟁」「실천투쟁」등 싸움이 아닌 곳에「투쟁」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91년 도 김일성 신년사에서도 군사 및 전쟁과 상관없는 곳에서「전투」와「투쟁」이란 용어를 열 번이나 표현하고 있다.
이같은 용어들의 사용은「전쟁」의 개념을 도입하여 한치 빈틈없이 치열하게 임해야 한다는 의식을 주입시킴으로써 일의 성취 욕을 유발해 내자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강하고 거센 표현=북한의 신문·잡지들은「틀어쥐었다」「해체 끼었다」「잡아 제 꼈다」「달라붙었다」「집중선동 공세를 들이댔다」「끝장을 볼 것이다」「다그치다」등 더 강하고 더 거센 표현을 쓰고 있다.
이같은 표현이 건설이나 공사·제조·농업 등 일과 관련된 것임으로 볼 때 그들의 생활에서 뭔가 강압적이고 긴장된 분위기 등을 읽을 수 있다.
◇붉은 이미지=「혁신의 불길」「백성의 불꽃을 날리며」「속도전의 불 바람」「당의 전투적 호소를 심장깊이 새긴」「농장원 대중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피끓는 심장에 충성의 불씨」「피나는 노력」등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불·심장·피는 모두 붉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붉은 색은 강렬한 인상을 짙게 주기 때문에 공산주의 혁명의 상징 색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심장·피와 관련된 언어표현은 북한의 정치적 이념인 사회주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전투적인 표현 강하고 거센 표현 등과 맥을 같이 한다.
◇비속한 표현=「원수 놈을 까 눕혔다」「요정 내고 야 말겠다」「원 쑤 놈들은 더욱 발광하였다」「왜놈들을 족쳤다」「주구 배」「미일간의 개싸움」등 말하는 이의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지시 대상을 천하게 여기는 표현들을 쓰고 있다.
◇고유한 우리 말=북한의 언어에는 우리가 쓰지 않는 고유어가 꽤 있다.
북한의 고유어는 남한에서도 고유어이나 북한의 고유어와 다른 경우, 남한에서는 한자어이나 북한에서는 고유어인 두 경우가 있다.
북한의「눈 굽」과「벼 가을」은 우리의「눈시울」「가을걷이」로 모두 고유어다.
또「드 놀다」「안 받침」은「흔들리다」「뒷받침」에 해당한다.「남새」(채소)·「바다나물」(해초)·「아지」(가지)「걸그림」(괘도)「짬 시간」(휴식시간=「짬」만 고유어)·「말밥」(구설수) 등은 북한의 고유어들로 그런대로 좋은 표현이다.
언어학자들은『이들 북한 고유어는 말 다듬기의 성과』 라며『우리 것을 갈고 지키려는 의지를 보인 고유어를 우리가 받아써도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색용어=「세포당원」「구역 당 조직부」「조직 정치사업」「사회주의 경쟁을 조직하여」「로력 조직」등 사회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용어들을 많이 쓰고 있다.
「당 세포」「세포당원」은 우리의「사회 구성원」을 뜻하는 표현이나「사회구성원」이 개개인이 능동적이고 활성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사회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이미지를 가진 반면「당세포」와「세포당원」은 빈틈없이 짜여진 조직 속에서 강제적이고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이미지를 갖는다.
◇외래어=남한의 외래어 유행 못지 않게 소련 식 등의 낱말들이 사용되고 있다.
「깜빠니아」(캠페인),「꼼비나뜨」(종합공장),「부리가다」(작업반),「뜨락또르」(트랙터),「테제」(강령·지침)등 이 있다.
◇자주 쓰이는「문화어」=김일성 개인이 일상적으로 즐겨 쓰는 말을 표준으로「문화어」 로 규정하고 있다.
「아글타글」(부지런히)「일본새」(일하는 솜씨·태도 등)「그쯘하다」(충분하다·가득하다)「무으다」(만들다·조직하다)「옹근」(본디 그대로의)「이악하다」(악착같다)「조동」「인사이동」「줴버리다」(내 던져 버리다)「지어는」(심지어는)「곽밥」(도시락)「빨래 집」 (세탁소)「원 주필」(볼펜)「손기척」(노크)「갈래」(장르). <김국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