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싸안고 이야기 꽃… 눈시울 적셔|경상대 박사학위 수여 때 재회 약속|48년만에 진주고보 동창들 만난 한-소 회담 통역 유학구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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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소 정상 회담 통역자인 재소동포 유학구 박사(67)가 48년만에 자신의 진주고보 동창생들을 만나 서로 얼싸안고 옛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소련과학원 산하 IMEMO(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 한국문제 책임자인 유 박사는 작년 12월 모스크바 한-소 정상회담 통역을 맡은 인연으로 지난 1월 외무부 외교안보 연구원 초청을 받고 귀국했었다.
유씨는 제주 한-소 정상회담 통역을 마친 뒤 27일 오후 서울 중림동 은정식당에서 열린 진주고보 14회 동창회에 참석했다.
일제말기인 43년 3월 졸업한 60대 후반의 동창생 25명은 이 자리에서 학창시절로 되돌아가「얌전한 수재」였던 소년 유 박사의 모습을 되새겼다.
동창생들은『진주라 천리 길』을 합창하며 고향의 정을 나눴고 유 박사도 동창들의 정에 못 이겨 소련민요를 부르는 등「48년의 타향살이」를 털어놓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동창생들은 황경춘씨(67·미 시사주간지 타임 서울 지국장), 허정호씨(67·서울 관훈동 신한 병원장), 김일근 박사(68·건국대 명예교수), 김일두씨(68·전 대검차장·변호사), 권경식씨(67·전 국회사무총장 대리), 권순찬씨(67·진주연암 공업 전문대학장), 서주성씨(67·양산전문 대학장)등 서울·부산·진주 등지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5월15일 경상대가 유 박사에게 제1호 명예박사 학위(한국고대사)를 수여키로 함에 따라 모두 진주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유 박사는 43년 진주고보를 졸업한 뒤 만주 하얼빈으로 가 당시 일본의 대소 전문가 양성기관이던 만주 국 국립 하얼빈학원 노어과에 입학, 2학년 재학 중이던 45년 8월9일 해방을 며칠 앞두고 일본군에 병명으로 끌려갔다.
입대5일만에 소련군의 포로가 된 그는 2년여 동안 스바보드니 시의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소련에 잔류하기로 결정, 8년여 동안 모스크바 중앙방송 하바로프스크 지국에서 일어 통역원으로 일했다.
그 뒤 모스크바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했고 유창한 일어 실력 등으로 소련내의 일본 전문가로 자리를 굳혔으며 IMEMO에서 활동을 해 왔다.
유 박사는『나의 간절한 소망은 고국과 소련간의 관계 발전에 진정한 도움이 될 민간 연구단체인 소련학 연구센터를 서울에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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