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책·사과로 끝날 일 아니다/정순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주말 전국민을 경악케 하며 정가에 한차례 회오리를 몰고온 명지대 강경대군 구타치사사건은 정부가 안응모 내무장관을 전격 경질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1차 낙동강 페놀오염사건때 거센 여론의 압력에도 불구,환경처장관의 문책을 어물쩡하게 넘겼다가 2차 오염사태까지 일어나서야 환경처장관을 경질한 정부로서는 이번만은 그같은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듯 사건 다음날,그것도 이례적으로 주말밤을 이용,전격 단행했다.
이번주부터는 국회상임위가 열리고 여야 공동조사단이 구성돼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특히 야당측이 이미 물러난 안장관의 형사책임까지 요구하고 있고 재야와 대학생들은 공권력 규탄대회 등 시위를 확산할 움직임이어서 정부가 바라는대로 그 파문은 쉽게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고삐풀린 공권력이 빚은,이미 예견된 참사였다고 볼 수 있다.
87년 6·29선언 직후 한때 거리에서 시위진압전경이 사라지고 파출소 창틀마다 화염병 방지용으로 쳐놓은 그물철조망이 철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6공이 들어서고 3년여세월이 흐른동안 거리에는 어느새 화염병이 날고 전경들이 다시 거리로 쏟아져나와 살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과격시위와 과격진압의 악순환이 되살아난 것이다.
더구나 3당합당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하루아침에 여대야소로 뒤바뀌고 뒤이어 이어진 공안정국으로 사회분위기가 냉각되면서 「이젠 더이상 눈치볼 필요가 없어진」 경찰은 고삐풀린 공권력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어떤 전경들은 거리에서 검문을 내세워 부녀자를 희롱하기 일쑤고 술취한 전경이 승용차를 훔쳐타고 행인을 폭행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밤길 부녀자를 집단폭행할 정도로 기강이나 제어력을 상실하고 있는 형편이다.
시위진압경찰들이 「공격형」진압을 한다는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진압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그 결과 몽둥이와 쇠파이프도 거리낌없이 거친 방법으로 휘두르게 되고 결국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만게 아닌가.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노재봉 국무총리의 국회 대국민 사과를 반영하듯 발빠른 문책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장관 한사람의 경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없다. 조금만 권력이 비대해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이 공권력의 비민주적 남용을 없애야만 하는 것이다. 구호가 아닌 진정한 민주화없이는 이런 비극은 언제나 재발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