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봄감기 들린 둑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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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청같이 진한

녹차 한 잔 마시고

빈속에 한 줌 찻잎을 씹는다

바늘 돋은 혀 찻잔에 대고

언 강 속에 흐르는

푸른 물로 은빛 아가미 같은 가슴을 적신다

버들피리 비늘 같은

까치 소리 풀잎 편지 전하며 강 언덕 너머에서

감기 들린 목구멍 같은 봄 둑길을 걷자고 한다



온 적 있는 선객에게도 차 한 잔, 온 적 없는 선객에게도 차 한 잔, 왜 그리 하시느냐 묻는 선객에게도 차 한 잔 건네며 일갈했던 조주선사의 화두,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혓바늘까지 돋은 겨울감기에도 '조청같이 진한 녹차 한 잔', 보약이겠습니다. 과로로 찌든 마음, 맑고 깨끗하게 씻겨 내리겠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끽다거, 탁해질 때마다 끽다거. 세상살이 별거 있다가도 없는 법.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종일 물 끓이노라!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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