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탁구만의 남-북 통일」|유상철<체육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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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분단이후 최장기 한솥밥 살림을 꾸려 가고 있는 코리아 탁구선수단이 보여줄 수 있는 통일의 끄트머리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결국 탁구에서 만의 남-북 단일 팀이란 한계를 벗어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탁구만의 남북통일」.
이곳 일본에서 한 달간 함께 땀 흘리며 고락을 같이해 연습에 몰두해 온 선수 및 임원들은 이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하나란 생각을 굳게 하고 있다.
이제까지 각종 대회에서 그 어느 팀과의 대결보다도 결사적으로 우선 시 되던 남-북 대결에서의 승리.
그것은 남-북한 모두 국제대회 출전 선수단에 으레 지워지는 운명의 굴레와도 같은 것이었다.
『81년 유고슬라비아 노비사드 세계 선수권대회 남자단체전 경기에서 관중들은 다 돌아가고 남북한 선수단만 남아 장장 4시간에 걸친 사투를 벌이던 모습이 한처럼 가슴에 남아 있다』는 코리아 팀 북측통역 노명회(46)씨의 회상은 피를 말리게 하던 남북대결 구조의 아픔을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그래서 힘들게 성사된 단일 팀은 그 어려운 만큼이나 통일의 물꼬를 트는 선봉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적대와 대결의 시대에서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전환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7천만겨레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4일 코리아 선수단을 격려키 위해 이곳 지 바를 찾은 박철언 체육청소년부장관과 김형진 코리아 팀 단장간의 8분 여에 걸친 짧고 어색한 만남은 통일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불허케 한다.
박 장관은 이날 오후6시부터 시작되는 코리아 여자 팀-루마니아의 경기를 관람키 위해 20분전 닛폰 컨벤션센터 제2체육관 스탠드상단에 자리잡았다.
6시15분쯤 경기장에 도착한 김형진 단장은 곧바로 스탠드하단에 착석, 박 장관이 10분 뒤 찾아와 인사를 건넬 때까지 무신경으로 일관했다.
전날 장 웅 북한 올림픽위원회 위원이 체육관에서 의식적으로 박 장관과의 대화를 피한 것과 같은 답답함을 안겼다.
북측의 이같은 태도는 이종구 국방장관의 발언과 한국의 UN단독가입 방침 결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풀이를 낳기도.
정말 꽃 피고 새 우는 봄은 왔건만 아직도 통일의 봄은 요원하기만 한 것 같은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지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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