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산업의 비싼 대가/원진레이온 산재 계기로 결단 내릴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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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원진레이온 근로자들의 연이은 중독사고는 공해산업의 무분별한 「수입」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중독을 일으키고 있는 이황화탄소는 2차대전때 독일이 신경독가스의 원료로 사용했을만큼 치명적인 유해물질이다. 그러나 현대과학으로도 이를 완전히 중화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은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60년대부터 이황화탄소가 발생하는 공장은 완전자동,무인화시키거나 다국적기업을 통해 후진국에 시설을 이전시켜왔다.
원진레이온이 이 땅에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
따라서 원진레이온의 문제는 기업측에 작업환경의 개선을 요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기업의 생산성이나 경쟁력은 원천적으로 「공해발생」을 전제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진레이온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정부의 산업정책적 결단에서 구해질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즉 공해나 직업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사회적 물의가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원진레이온에 엄격한 환경기준을 요구함으로써 이 기업이 조만간 「변신」의 길을 찾도록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 바로 정부가 그러한 결단을 내릴 때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는 정부가 이 원진레이온의 경우를 좋은 교훈으로 삼을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어떤 면에서는 원진레이온문제는 엎질러진 물과 같은 문제다. 또다시 이런 골치거리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선진국으로부터의 공해산업 유입에 엄격한 제한을 가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의 국내산업투자가 개방되면서 다국적기업들에 의한 공해산업진출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외자도입법에 「국민의 보건위생 및 환경보전에 해를 끼치는 사업」에 대해서는 외국인투자를 금지시키는 조항을 마련해 놓고 있으나 아직도 그 시행규칙이나 고시가 없어 모법의 규정자체가 유명무실화 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정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제2,제3의 원진레이온이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울산·온산공단에 자리잡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87%가 공해업종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하루빨리 외자도입법이나 외국인투자인가지침을 강화·보완해 공해산업이 더이상은 유입될 수 없게 해야 한다. 눈앞에 수출증대를 위한 것이 결국은 더 큰 경제적 비용마저 지불케 한다는 것을 원진레이온의 사고는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번 원진레이온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마땅히 책임감을 갖고 작업환경의 개선과 피해자 보상문제 등에 임해야 한다.
도대체 원진레이온문제가 언제때의 일인가. 최종판정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재보상을 늦추고 그동안에 피해자가 숨지고마는 기막힌 현실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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