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외교자세 보일 때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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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한 장면을 지켜보면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보여준 무원칙과 무소신 때문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도 남의 집을 방문하려면 며칠 전부터 약속하고, 또 이를 확인하는 것이 상례 다.
하물며 수교국가의 정상끼리 만나는 중요한 행사라면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행사 하루 전까지도 일 정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했는데 외교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있다.
또 아무리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장을 감안하더라도 회담 장소가 서울 대신 제주로 결정된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 안방을 놔두고 문간방에서 손님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이런 모든 흠집들을 실리외교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소련 측은 한술 더 떠 당초 예정에는 전혀 없던 제주에서의 1박을 제시했고 우리측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정확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외교의 방향이 명분보다는 실리 쪽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질질 끌려 다니며 줏대 없는 외교대신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도 주권국가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상국<대구시 수성구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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