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 '공무원 감싸기' 정부 안팎서 질타 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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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가 당초 약속했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미루는 데 대한 반발과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학계에선 "대선을 앞두고 공무원 표를 의식해 개혁을 미루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적용을 받는 공무원 수는 지난해 100만 명을 넘어섰다. 공무원연금 수급자도 23만 명에 육박한다.

인터넷상에서는 "국민에겐 연금 개혁을 하라고 강요하면서 공무원들은 최소한의 고통 분담도 하지 않는다"며 비난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장관 바뀌더니 지지부진=지난해 12월 초까지 행자부 산하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거의 매주 회의를 열었다. 연말까지 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 각 부처에 발전위 초안을 보내 의견 수렴까지 했다. 그러나 박명재 장관이 취임(지난해 12월 13일)한 뒤부터 속도가 확 떨어졌다. 12월 12일 10차 회의를 한 뒤 아직 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다. 세 번이나 회의 날짜가 잡혔으나 모두 무산됐다.

한나라당 전재희 정책위의장은 "얼마 전까지 금방 개혁할 것처럼 굴던 정부가 왜 갑자기 멈칫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호 관동대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정부 안 확정이 늦어지면 국회에서 연금 개혁 안을 처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현재 7000억원 수준인 적자가 2020년 10조원, 2030년 25조원으로 늘어난다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적자는 모두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부처끼리도 삐걱=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3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와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연금개혁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장관들과의 간담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다음 정부로 미루면 안 된다.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되더라도 정부 입장에선 할 일(연금 개혁)은 책임 있게 마무리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하루 전날 박명재 행자부 장관이 "공무원연금 개혁 관련 정부 최종 안이 언제 나올지 못 박기 어렵다"고 말한 데 대한 질책성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청와대 브리핑에선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미루지 말라고 말했다는 건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의 진짜 입장이 무엇이냐"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늦어지면서 이미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도 지연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행자부가 계속 미적대면 복지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등도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뒷걸음치는 개혁=박 장관은 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공무원연금 개혁은 세 가지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자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재직자는 보험료 부담을 늘리며▶신규 임용자는 국민연금과 비슷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편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퇴직자가 받는 연금은 매년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반영해 자동 증액된다. KDI는 이를 물가상승률만 반영하게끔 고쳐야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행자부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쪽으로 사실상 결론을 내렸다.

발전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는 수준이면 공무원이 보험료를 조금 더 내기는 하지만 받는 돈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근.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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