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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남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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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함께 광주에 가자고 권하자, 아내는 "전라도 광주요?" 하고 물었다. 기자에게 광주는 오직 한 곳, '전라도 광주'뿐이다. 대학교에 다닐 때, 수업 중에 낯선, 그러나 어디서 본 듯한 사나이가 심심찮게 학생을 불러냈다. 사나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안기부 직원인데요"로 말을 시작했다. 그들을 만날 것 같은 날, 광주에 갔다. 대학 선배들의 부모와 친구가 있는 광주는 따뜻했고, 가고 싶은 곳이었다. 80년대가 막 시작된 그 시절, 오랫동안 도청 건물을 바라보다 문득 철원의 노동당사와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죄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에게는 경기도 광주가 훨씬 더 가까운 곳이고, 전라도로 가는 일은 긴 여행이었다. 광주에 가본 일이 없는 아내에게 광주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겨우 생각해낸 것은 옛 전남도청과 거기서 이리저리 이어진 금남로와 충장로 같은 거리였다. 정찬주 선생의 또 다른 소설, '쥐방울꽃'에 등장하는 지산동과 방림동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그곳은 마음속의 흔적일 뿐이었다. 전남도청은 2005년 무안으로 옮겼다. 옛 전남도청은 어둠에 싸인 채 고요했다. 광장에 세운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불빛이 무심하게 반짝거렸다.

충장로는 눈부셨다. 골목골목 화려한 간판이 하늘을 뒤덮었다. 젊은 남녀가 서로 꼭 끌어안은 채 거리를 오갔다. 아내는 그들을 보곤 "어딜 가든…"이라며 웃었다. 그것은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밥 딜런이 63년 뉴욕에서 찍은, '더 프리휠링'(The Freewheelin')의 재킷 사진 정도는 흘러간 시절의 그림이다. 하지만 기자가 마지막으로 광주를 방문한 때는 2002년이었다. 마지막 방문으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과정을 생략하고 첫인상 속의 광주로 이끌린다.

현실과 추억의 거리는 분명하다. 잔인한 시대의 충장로에서 학생 시절의 기자는 '빛의 무덤'을 생각했다. 광주는 인간의 영혼이 세상의 빛임을 보여준 도시였고, 빛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눈 쌓인 산비탈에 무너진 육신을 내다 묻어도 빛은 영원히 도시에 머무를 것이었다. '겨울 남행'에서 정찬주 선생은 눈 쌓인 망월동을 찾아가 '침묵만이 분명했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 세상 어느 곳에도 '빛의 카타콤'은 없는 것이다. 검은 옷을 입고 찾아간 광주. 충장로는 서울의 어느 골목보다 눈부셨다.

광주역에서 택시를 타고 빈소가 있는 조선대 병원으로 가면서, 길가에 수북이 쌓인 눈을 봤다. "언제 내린 눈이냐"고 묻자 기사는 "서울이랑 똑같다. 사흘 전에 왔다"고 대답했다. '서울이랑 똑같다'는 택시기사의 말에 별 뜻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서울이랑 똑같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사실 사흘 전의 서울은 맑았고, 대신 엄청나게 추웠다. 택시기사의 말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서울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날씨 기사를 검색해 보니 눈은 역시 호남지방에 많이 내렸다.

허진석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