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I 규제 확대…대출한도 문의 '빗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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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당국이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할 때 지역이나 집 값에 관계없이 총부채상환비율(DTI) 40%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함에 따라 대출 문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투기적인 주택 구입을 막는 효과는 기대되지만 실수요자가 대출을 제대로 못받아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DTI 40% 규정을 전 지역.전 주택에 적용할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DTI 규제는 현재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자영업자와 은퇴 생활자 등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 소비자들의 주택구입마저도 봉쇄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감독당국의 여신 심사 모범 규준 마련에 앞서 국민은행이 3일 처음으로 전 지역.전 주택을 대상으로 DTI 40% 규제를 적용하자 창구에 대출 한도를 문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 고객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DTI 규제 적용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면서 한편으로 뜻하지 않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운영의 묘를 살리는 방안을 신중히 모색하고 있다.

창구 문의 '빗발'…일부 항의도

국민은행이 이날부터 DTI 40% 규제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지점 창구로 문의전화가 크게 늘어났다.

국민은행 대구 범어동 지점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접한 고객들이 본인의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문의전화를 여러 건 했다"며 "새로운 제도 시행 원칙에 따라 안내를 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대치동 지점 관계자도 "DTI라는 다소 생소한 제도가 시행되면서 문의사항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기존에 LTV(담보인정비율)만 적용될 때에 비해 대출 한도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묻는 질문이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송파역 지점 관계자는 "주부 등 소득 입증이 어려운 고객들은 DTI 규제를 적용하면 대출한도가 크게 줄어들게 돼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개포동 지점 관계자는 "본인의 소득으로 가능한 대출한도를 물은 후 대출 금액이 기대보다 작으면 인근 외국계은행으로 주저 없이 가버리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국민銀, 본점 승인 때 예외 적용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DTI 규제를 새로 시행하면서 '본점 승인을 얻는 경우 DTI 규제에 예외가 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본점 승인이라는 포괄적인 예외조항을 둬 당장 현금흐름은 부족하지만 채무 상환 능력이 분명한 실수요자가 피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뒀다.

국민은행은 특히 전 영업점에 보완 공문을 통해 3개월 이상 보유한 주택을 담보로 창구에서 긴급 가계자금이나 생활안정자금 등 자금 용도가 명확하다고 심사한 경우 본점 승인을 얻은 것으로 간주해 대출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상당수 기존 주택을 담보로 적어도 긴박한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것까지 봉쇄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민은행은 또 대출금액이 5천만원 이하이거나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 국민주택기금 등도 제외로 설정했다.

대출금액 5천만원 이하 예외 조항은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소액대출까지 DTI 40% 규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지방의 주택대출은 5천만원 이하인 경우가 많아 이 같은 예외조항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제2금융권 대출도 위축 불가피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보험사 등 제2금융권도 DTI 40% 규정을 적용하면 대출 위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부족한 금액은 제2금융권 대출로 채울 수 있지만 앞으로는 힘들게 되는 셈이다.

특히 대출 규모나 금리 수준 등을 볼 때 은행과 차이가 있는 제2금융권의 경우 은행과 동일한 대출 규제를 할 경우 수요자 입장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문이 크게 좁아지게 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작년 11.15 부동산 대책에 따른 LTV 규제 강화로 주택담보대출 영업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과 DTI 규제를 똑같이 적용하면 결국 대출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은행에 비해 대출 금리가 높은데 똑같은 DTI 규제를 받을 경우 대출 자산 운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특히 근로소득자보다 소득 증빙이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는 대출을 받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1월말 현재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75조7천억원으로 이중 은행이 215조1천억원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농협.수협 등 상호금융회사 31조5천억원, 보험사 14조1천억원, 새마을금고 9조원, 저축은행 5조1천억원 등이다.

지난해 제도권 금융회사의 LTV 규제 등을 강화한 이후 대부업체와 같은 사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고 있는데 DTI 규제를 더욱 조일 경우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DTI 태스크포스도 실수요자 피해 막기 '고심'

현재 금융감독당국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인 시중은행들은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 실수요자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DTI는 현재 현금 흐름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한도를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소득 입증이 어렵거나, 현재 충분한 자산이 있지만 명확한 현금흐름이 없는 소비자들을 구제한다는 것이 골자다.

뜻하지 않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주요 사례에는 우선 자영업자들이 포함된다.

소득입증을 명확하게 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는 현금 흐름이 양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연금을 한꺼번에 수령한 은퇴자도 채무상환 능력은 충분하지만 현재 현금흐름은 부족한 소비자들이다.

이들에 대해 은행 자체의 고객 등급을 보거나 주거래 은행의 예금 등 현금 흐름을 관찰해 본점 승인으로 대출을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외에 취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층은 과거 소득 증명이 불가능해 대출이 어렵게 된다.

미래 소득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들이 취업한 직장 등을 고려해 역시 본점 승인을 통해 대출을 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대출기간을 늘려 DTI 적용을 무력화하는 편법이 등장하면 제도 시행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점에서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 역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태스크포스가 공식 안을 마련하기에 앞서 이 같은 DTI 규제의 맹점을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며 " 채무상환 능력이 충분하고 실수요자인 경우 현금 흐름이 명확히 잡히지 않더라도 대출을 해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예외 조항을 너무 많이 둘 경우 제도 시행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중용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도 "현재 DTI 확대 적용 문제를 놓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단계"라며 "뜻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양산될 수 있는 제도인 만큼 시행에 앞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도 "대출 심사의 기준을 종전의 담보에서 채무상환능력 위주로 바꿔 금융기관의 대출 건전성을 확보하고 가계 부실도 막자는 것"이라며 "다만 실수요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DTI 규제의 예외 대상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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