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져가는 4·19정신/오병상 문화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올해도 변함없이 산과 들에 피어난 진달래를 따라 31세 장년의 4·19가 찾아왔다.
정부를 비롯한 관련단체·대학생들의 기념행사가 잇따르고 「수유리 4·19묘지」에 참배객이 모여든 것도 예년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곳에 누운 젊은 영령들은 올해 유난히 실망하고 상심할 것만 같다. 그들에겐 이승에 살아 이제 사회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선 50대 초반 옛 동지들,영원히 젊은 4·19의 주인공을 자처하는 후배 대학생들이 30년전 자신들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올해 4·19 관련행사가 대부분 「때되면 치르는」행사성에 치우쳐 4·19가 남긴 역사적 교훈을 찾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4·19에 참가했다 희생된 선열들 유가족모임인 「희생자유족회」,참가해 부상한 「상이자회」,다치진 않았지만 활동을 인정받아 포상받은 「4·19회」. 이들 세 단체는 지난해 「4·19 주제심포지엄」「조찬기도회」 등을 열었으나 올해는 묘지참배 「추모제」·「가족의 밤」행사만 가졌다.
4·19세대 여야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무명회」는 지난해 기념토론회를 가졌으나 올해는 「4월회」로 조직을 확대하고 묘소를 참배했을 뿐이다.
4·19세대중 진보적 재야인사들이 중심인 「4월혁명연구소」는 지난해 대규모 학술행사를 갖고 4·19 연구결과를 책 두권으로 펴냈으나 올해는 강연회를 개최하는데 그쳤다.
중요한 것은 행사규모가 아니라 내용이다. 앞의 네단체는 모두 내부행사에 머문 셈이며,4월 혁명연구소의 강연회도 4·19 자체보다 노동운동·통일운동 등 현재의 민주화과제에 대한 대중강연회 정도에 그친 느낌이다.
더욱이 「4월회」는 모임을 확대하면서 4·19세대중 자신들과 무관한 일부 진보적 저명인사의 명단을 임의로 집어넣어 공개했다가 뒤늦게 항의하자 사과하고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여 「4월정신보다 외양갖추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대학생들의 4·19도 행사성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시내 각 대학이 대부분 기념행사로 마라톤을 하고 묘소를 참배하는 정도다.
4·19가 그저 헌화하고 묵념하는 행사로 그쳐서는 안된다. 4·19는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4·19를 가슴속의 추억만으로 되새기거나,성급히 그날의 함성만을 떠올린다면 4·19는 영원히 미완으로 남을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