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틀로 21세기 대처 386 진보세력은 실패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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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던 386들이 지난해 말 서울광장을 찾아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열린우리당 송영길·김영춘 의원,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 [사진=김성룡 기자]

열린우리당 김영춘.송영길 의원과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은 "민주화, 진보세력은 80년대식 시야와 사고의 패러다임을 갖고 21세기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었고, 그래서 실패했다"며 "386은 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1987년 6.10 민주화 항쟁 2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에서 좌담회를 갖고 "이제 민주와 독재의 투쟁이 아니라 세계에서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386세대가 대답해 줘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 의원과 송 의원은 같은 81학번(81년도에 대학 입학)으로 84년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정치권에 입문해 국회의원에 두 번 당선된 386세대의 상징적 인물들이다. 한나라당 김 의원은 민주화 투쟁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87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시위대열에 합류했었고, 판사.변호사 경력을 가진 초선의원이다.

좌담은 지난해 12월 30일, 참석자들이 20년 전 수십만 명의 민주화 시위대가 점거했던 서울시청 앞 광장을 둘러본 뒤 중앙일보에서 이뤄졌다. 이날 사회는 역시 386세대인 김종혁 정책사회 데스크가 봤다.

김영춘 의원은 "지금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시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구조이고 세계"라며 "국민은 우리에게 '지금 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래'라고 묻고 있는데 우리의 시선은 80년대에 갇혀 있었다"고 반성했다. 그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과 상황에 대해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며 "민주화 세력과 진보세력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송 의원은 "많은 공과가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보산업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며 "노무현 시대는 혁신이라고 하지만 선명한 게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있는 부(富)를 나눠주는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먼저 먹고 살 토대를 만들어 내야 한다"며 "우리에게는 분배형 지도자가 아니라 생산형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87년의 시위와 최근의 폭력시위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당시의 시위는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에 대한 항거였기 때문에 국민의 저항권으로 봐야 한다(김명주)"며 "국민에 의해 뽑힌 정부가 폭력에 계속 양보하고 무너진다면, 그런 게 일반화돼 사회 혼란이 일어나면 또다시 독재에 대한 향수가 나올 수 있다(송영길)"고 했다.

김영춘 의원은 학생운동권에서 주체사상이 넓게 퍼진 데 대해 "주체사상은 국가 사회를 발전시킬 원리로는 성립 불가능하다"며 "주체사상은 과거(운동권)로부터의 저주"라고 말했다.

반미 정서와 관련해 김명주 의원은 "미국을 어떻게 볼지는 먼저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느냐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며 "반미나 친미는 개인 감정일 수 있지만 미국이 초강대국이라는 현실을 분명히 알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2년 대선 때 386세대의 표가 특정(노무현) 후보에게 몰렸던 현상이 이번 대선에서도 재현될지에 대해 김영춘 의원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쪽도 있고, 진보적 자유주의나 사회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삼는 쪽도 나오는 등 분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명주 의원은 "당시 386이 노 후보를 지지했던 건 기득권에 대한 도전의식 때문이었다"며 "이번에는 객관적 상황이 달라 집단적 표출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수련 기자<africasu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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