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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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처음 만난 것은 1985년 11월 스위스에서 였다. 미소정상의 상견례였던 셈이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은 그 무렵 군비경쟁에 열을 올리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을 때였다.
보나마나 이들의 첫 대면은 분위기가 서먹서먹했을 것이다. 레이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련 사람과 미국 사람이 만나 두나라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에 관해 토론을 하고 있었지요. 먼저 미국 사람이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가 대통령 앞에서 그의 책상을 주먹으로 꽝하고 내려치며 「당신의 국가운영방식을 찬성하지 않는단 말이오」라고 말할 수 있소.』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소련 사람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미국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며 『나도 크렘린궁의 정치국을 찾아가 주먹으로 고르비의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칠 수 있소. 「나는 레이건의 국가운영 방식을 찬성할 수 없소」라고 말이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그순간 박장대소했다. 회담장의 얼음장은 순식간에 녹고 말았다.
정상회담의 장점은 현안의 문제들을 일괄해서 풀 수 있다는데 있다. 지난 70년대이후 세계정치는 바로 그 정상회담에 좌우되어 왔다. 물론 그것은 60년대의 격렬한 냉전체제가 몰고온 관행이었지만 70년대에 각국의 정상들 사이에 핫라인(긴급전화)이 개설되면서 정상회담은 외교의 유행처럼 번졌다.
따라서 요즘의 세계 외교무대엔 대사는 없고 중사나 소사가 있을뿐이라는 조크도 있다. 시시콜콜한 문제까지도 정상회담에 넘겨지고,정작 대사들은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대사는 서류봉투나 들고 왔다 갔다하면 된다.
그러나 현안의 외교문제들중엔 작지만 놓쳐서는 안되는 일들도 적지 않다. 정상회담이 그런것까지 챙길 수는 없다.
그럴수록 주목받는 것은 정상회담에 나서는 지도자의 리더십과 주도면밀한 외교력,협상능력,그리고 시대의 진운을 뚫어보는 통찰력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세계의 정치를 요리하는 정상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우리 정치인의 틀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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