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권좌 튼튼한가/해외 인기… 국내선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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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난으로 실각설 끊이지 않아/보수­개혁 틈바구니서 진퇴양난
활발한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인기가 높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이번엔 16일부터 아시아의 주요국 일본과 한국을 상대로 외교수완을 발휘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의 허약한 정치위상을 반영한 실각설이 끈질기게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일본의 지지(시사)통신이 모스크바 소식통을 인용,「궁정쿠데타」 가능성을 보도했다. 이어 미국의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도 14일 미 NBC­TV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르바초프는 분명히 어떤 점에서 몰락하고 있다』고 말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실각할 것』이라는 자신의 2년전 예견이 『불행하게도 지금도 타당한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9일엔 비러시아족 정치지도자로 고르바초프의 강력한 지지자로 알려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 대통령이 『금년이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기회며 만일 그가 급격한 변화를 단행,권력을 완전 장악하고 현 상황을 주도한 뒤 소련인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흥미있는 개혁계획을 제시한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 1991년은 그의 마지막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13일엔 아나톨리 소브차크 레닌그라드 시장이 『고르바초프가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조치들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경제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고르바초프는 그의 정치경력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다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라이벌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은 14일 『각 지방 공화국들의 증대되고 있는 권력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행정권한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만일 연방내 주권국가를 위해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조정자로서의 대통령이어야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전혀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의 허약한 위상을 말해주는 이와 같은 경고들은 작년 10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당초의 약속과 예상을 뒤엎고 샤탈린 전 대통령위원회 위원의 「5백일 경제개혁안」을 포기하고 보수파들의 입김에 굴복하면서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급진개혁파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보장과 몰락해가는 관료·공산당 등의 기득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급진개혁파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진영과의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특히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상징적 인물이던 개혁적 인사들이 보수적 인사들로 교체되면서 초래된 정책에 있어서의 보수회귀는 소련의 정치·경제·사회상황을 극도로 악화시켜 사회적인 긴장을 높여가고 있다.
파블로프 총리팀이 구성된 이래 단행된 화폐개혁·물가인상 등의 조치에 항의하는 탄광광원들의 파업과 이와 함께 보다 많은 경제자치 및 독립을 요구하는 백러시아공화국의 파업,그루지야공화국의 독립선언 등은 소련의 유통체계를 붕괴시키고 있으며 경제를 파탄의 지경에 빠뜨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파들은 연방을 보전할 힘과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대통령의 책무를 포기한 채 우유부단한 태도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난,일부에서는 그의 사임까지도 요구하고 나섰다.
고르바초프로서는 그야말로 좌우의 공세에 의해 출구없는 골짜기에 갇힌 형국이 된 셈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고르바초프가 택할 수 있는 길이란 옐친등 급진개혁파가 요구하는 정치적인 항복의 길을 택하느냐,아니면 아직까지 자신을 「간판」으로 내걸고 연방보전이란 명목으로 보수파의 정책을 관철하고자 하는 강경파의 요구에 기울어지느냐는 두가지 길밖에 없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지난 3월25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CIA(중앙정보국)와 DIA(국방정보국) 분석가들의 견해를 인용,소련의 정책결정에 블라디미르 클루츠코프 KGB(국가보안위원회) 의장,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 등 강경파들이 고르바초프 대통령보다 더 큰 실권을 갖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고르바초프가 최근 터져나오고 있는 그의 실각설을 어떤 방식으로 불식시켜 나갈지 궁금하기 그지없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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