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나라가 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2007년 새 아침이 밝았다. 정해년(丁亥年)이 황금돼지 해라는 속설(俗說)에 서민들도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난해 우리는 그런 미신이라도 믿고 싶을 정도로 고단하게 살아왔다. 실업률이 3.2%, 그 가운데 청년 실업률이 7.5%에 이르러 취업은 바늘구멍이 됐다. 정부 정책을 비웃듯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짓뭉개 버렸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역사의 고비마다 슬기롭게 이겨내 왔다. 10년 전 외환위기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극복했다. 올해는 특별히 우리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할 해다.

지난해 우리를 힘들게 만든 것은 좌충우돌하는 정부 정책이었다. 예측 가능한 안정적 행정보다 돌출적이고 충동적인 정책들이 날을 세웠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갈팡질팡했다. 정체 모를 대중의 박수소리를 따라 정책이 춤췄지만 정작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떠넘겨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주택정책이다.

올해 12월 19일은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또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책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새 지도자를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우리에게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낡은 이념의 틀로 국민을 과거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으로 이끄는 지도자여야 한다. 국민을 편가르기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국론을 통합하고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좀 더 편하게 해 주는 지도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각자 미래의 꿈에 맞춰 평가표를 만들고, 꼼꼼히 따져 보자.

올해는 연초부터 차기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임기 말 상태에 들어갔다. 임기 말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나라 앞날이 달라진다. 노 대통령은 지난 연말까지도 공격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이제 할 말은 하겠다"며 갈등 관계를 더욱 증폭시키겠다는 각오까지 보였다. 한 자릿수까지 추락한 지지도에 충격을 받은 결과가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석도 있었다. 새해에는 그런 감정의 앙금부터 털어버리고 국정의 안정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남은 1년은 지난 4년 못지않게 중요하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끝이 좋은 술이 좋은 술로 기억된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갈등과 분열이 더욱 심각해질 소지가 있다. 대통령을 포함해 각 정당은 갈등을 확대시키기보다는 치유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노 대통령은 마지막 한 해라도 지난 4년 어느 해보다 푸근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애써 주기 바란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는 너무 늦었다. 다음 대통령이 결정할 일을 미리 벌여 나라 살림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남북정상회담 등 무리하게 치적을 만들어 내려는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 공정한 선거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중심에 선다면 국민도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언론이 쓴소리를 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지 결코 특정 정파나 정치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의 지적대로 언론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없는지 스스로를 살펴보고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들도 선거를 이기는 데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선거만 있다고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회의 각 제도가 원활하게 굴러가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과 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금도(襟度)다.

특히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야 정치인의 초당적 협조가 필요하다. 정부도 여야 정치권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미 관계는 사상 최악의 상태다. 양국 정부 간의 신뢰는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다. 다음 정부로 넘기기 전 최소한의 봉합은 해 놓아야 한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자원이 없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노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마무리해 주기를 기대한다. 여기에는 여야 정치권도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를 평화 시위 문화 정착의 원년으로 삼겠다던 정부의 목표는 무산됐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FTA 반대 등을 위해 폭력 시위는 계속됐다. 현 정부의 분명치 않은 방침으로 경찰이 죽봉에 맞으면서도 단호하게 진압에 나서지 못했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권교체기를 맞아 법과 질서가 흔들리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먹고사는 문제는 하루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자칫 경제마저 정치바람에 휘둘리면 그나마 이 나라를 버텨 온 기둥이 흔들린다. 경제가 무너지고 나면 대선에서 누가 이기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경제는 성장률 4%대 초반을 넘지 않을 만큼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서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없다.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는 일도 낙관하기 어렵다. 관건은 기업의 투자다. 기업이 활발하게 투자를 해야 일자리도 생기고 국민의 호주머니도 불릴 수 있다. 그러자면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온갖 규제부터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기업도 정권교체기의 혼란에 휩쓸리지 말고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국민이 정신 차려야 한다. 임기 말에다 선거를 앞뒀으니 정치 지도자들을 쳐다봐야 해결책이 안 나온다. 미래는 국민이 끌고 간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는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성장시켰다. 전쟁의 폐허에서 국제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국으로 일어선 유일한 나라다. 외환위기를 털고 일어나 옛날이야기로 만든 저력을 가진 국민이다. 정치권이 낡은 정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뚜벅뚜벅 미래를 향해 걸어온 것이 우리 국민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져도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