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의 상품화 막는 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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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늘날 첨단과학의 눈부신 발달은 의학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덕분에 수명의 연장과 생명의 구호가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도로 발전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장기이식 시술의 보편화다.
병든 환자의 장기를 떼어내고 건강한 것으로 바꿔줌으로써 귀중한 목숨을 건진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받는 만큼이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첨단의술도 살아있는 장기를 확보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커다란 사회문제의 요인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죽음개념인 심장사에서 「뇌사」라는 새로운 죽음의 정의가 나오게 됐고 인체의 장기를 거래하는 해괴한 관행마저 생기게 된 것이다.
서울의 일부 큰 병원 주변에서 사람의 장기중의 하나인 신장의 암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는 어제 날짜 중앙일보 보도는 놀랍고 충격적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돈을 받고 떼어서 팔고 사는 행위는 분명히 불법적이며,우리의 전통적인 고정관념으로는 부도덕이고 비인간적이다.
이러한 행위를 그대로 방치한다면,생계가 궁핍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의 장기를 판다든가 사망때에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생전에 자기의 장기를 매매하는 행위도 일어날 수 있다. 또 가족이나 타인의 장기를 매매하는 행위도 있을 수 있으며,최악의 경우 인간의 장기를 노린 살인까지 유발할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용납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학·법학전문가나 종교인들은 인간의 장기매매에 단호한 반대입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장기는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일종의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또 치명적으로 장기의 손상을 입은 환자쪽의 입장은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욕망을 갖는다. 여기서 장기를 둘러싼 암거래의 소지가 마련되는 것이다.
장기의 수요에 비해서 공급부족 상태가 장기의 매매를 유발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공급을 늘리고,그 과정을 공식화하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다.
장기의 공급을 늘린다는 것은 장기의 자발적인 기증자가 나서도록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시정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일이다. 이러한 국민의식의 변화에 따라 이웃 일본에서는 지난 84년 현재 신장제공자가 이식희망자의 10배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장기이식 희망자와 제공자를 연결시켜주는 「장기정보센터」나 「이식센터」가 설립돼 이를 통한 양자의 연결에 의한 경우만을 시술의 조건으로 한정한다면 최소한 매매행위는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될 것이다.
장기이식에 대한 국민의식의 변화와 중개기구가 생긴다 해도 「뇌사」의 사회적·법률적 용인이 없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대부분의 장기기증이 사후기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이식이라는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는데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양식이 크게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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