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후세인 사형집행 왜 서둘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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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이 형이 확정된 지 나흘 만에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후세인 변호인단이 미국서 29일 제출한 처형일시 중지 신청을 기각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다.

인도.프랑스 등 일부 국가와 교황청, 유럽연합(EU), 국제 인권단체들의 사형집행 반대에도 미국과 이라크 과도정부는 사형집행에 합의하고 이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30일 "일반인들도 사형 확정 후 나흘 만에 교수대로 끌려가는 경우가 없다"며 "미국과 이라크가 지나치게 서둘렀다"고 평했다. 방송은 이라크나 미국 모두 '전환점'이 필요했다라고 설명했다.

중간선거 패배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는 패배의 원인인 이라크 정책의 수정이 필요했고, 후세인 사형을 그 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제거라는 전리품을 챙기면서 내년부터는 새로운 이라크 카드를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부시 대통령은 내년 초 새로운 이라크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친미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에게도 후세인의 제거는 큰 의미가 있다. 종파 갈등으로 내전으로 치닫고 있는 치안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나약한 총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올해가 가기 전' 현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전환점이 필요했다.

후세인을 지지하는 수니파 저항세력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전리품'인 후세인을 가장 적절하게 이용해야 할 때였던 셈이다. 후세인을 처형하고 이에 반발하는 수니파 저항세력도 강력히 진압해 정국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저항세력 소탕에 실패할 경우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아랍 언론은 전했다.

후세인 사형의 조기집행에는 법적인 문제도 걸려있다. 내년 4월이면 후세인이 만 70세가 되기 때문이다. 이라크 형법은 70세가 넘을 경우 사형 집행을 금지하고 있다. 처형을 질질 끌게 될 경우 이라크는 물론 국제사회의 반대운동이 일어나 사형집행에 정치적인 부담을 안게 된다.

후세인의 처형 일자를 30일로 정한 것도 아이러니다. 30일은 이슬람의 최대종교 행사인 성지순례가 절정을 이루는 날이다. 사우디 메카에 모인 200만 순례객은 물론 이라크를 포함해 전이슬람권에서 희생제를 시작하는 날이다. 주로 30일 오전 무슬림들은 양, 염소, 소, 낙타 등을 도살해 그 고기를 친지와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을 신에게 바쳤던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가축이 도살되는 시점에 후세인의 처형시간을 맞춘 것은 일종의 '모욕'이다. 후세인을 가축과 동일시하는 이라크 시아파 정치인들의 경멸이 담긴 움직임이다. 여기에 30일부터 3-4일간 이라크와 이슬람권은 축제에 들어가기 때문에, 후세인 처형에 대한 국민과 아랍권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점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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