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칙칙한 그림에 담긴 쓰디쓴 유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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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불운한 아이, 이상한 소파, 윌로데일 핸드카, 쓸모 있는 조언

에드워드 고리 글그림, 박수진윤희기이예원 옮김

미메시스, 각 64쪽, 각 6500원

부조리한 현실을 아이러니한 유머로 그린 에드워드 고리(1925~2000)의 작품집 네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불운한 아이'는 그중 줄거리가 가장 명확한 작품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샬럿 소피아란 아이에게 불운이 닥쳐온다. 어느 날 아프리카로 떠난 육군 대령 아버지의 부고가 날아들고, 충격받은 어머니는 세상을 뜬다. 유일한 혈육인 삼촌은 벽돌에 머리를 맞아 죽고, 샬럿은 혼자가 된다. 기숙학교의 힘든 삶에서 도망쳐나왔다가 주정뱅이에게 팔려 지하방에서 착취당하는 등 책장을 넘길수록 아이는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는 장면에는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일말의 희망마저 깡그리 무너뜨리는 결말을 낸다.

'이상한 소파'는 원제에 '포르노그래피'라 밝혔다. 그러나 벌거벗은 그림이나 적나라한 문장은 나오지 않아 아이들이 봐도 무방할 정도다. "결국 택시 안 바닥에서 그들은 일을 저질렀다"는 설명에, 택시 유리창으로 손만 보이는 삽화를 곁들인 식이다. 보는 이의 상상력에 따라 포르노의 농도가 달라진달까. 이 책은 작가가 'Ogdred Weary'란 가짜 이름으로 냈다. 본명 'Edward Gorey'의 철자 순서만 뒤바꾸어 만든 가명에서 그의 장난기를 엿볼 수 있다.

'윌로데일 핸드카'는 세 남녀가 수동 핸드카를 타고 미국 시골을 여행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두 번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책이다. 수수께끼의 힌트가 될 수도 있는 첫 장의 삽화가 국내판에는 생략됐다. '쓸모 있는 조언'(그림)은 이번에 나온 네 권의 시리즈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같다. 현실이 아닌 초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들을 잇달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가 펜과 잉크만 사용해 그린 그림 역시 음울하면서도 개성 넘친다. 밝고 맑고 '정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읽을 엄두를 내지 않는 게 낫다. 음울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선택해도 좋을 듯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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