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가 과외' 시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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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국 정부가 800만 명의 전국 초.중.고교생 가운데 학교별 상위 10%에게 별도의 '국가 과외'를 시키기로 했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28일 보도했다. '국가 인재 찾기'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전국 석차를 이용하지 않고 학교별로 우수 학생을 뽑는다는 게 특징이다.

선발된 학생들에게는 151포인트까지 쓸 수 있는 바우처(voucher.일종의 수강 쿠폰)가 주어진다. 학생들은 이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과목에 등록해 수업을 들으면 된다. 주말과 여름방학을 이용해 대학에서 과목별 심화학습을 할 수도 있고, 방과 후 온라인 수업에 참여해도 된다. 중국어 등 외국어 교실도 마련된다. 수학.과학 영재를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과 연계해 온라인 과외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있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내년 1월 학교 실태조사 때 각급 학교에 상위 10% 학생의 명단을 제출토록 할 방침이다. 앤드루 아도니스 교육부 학교담당 차관은 "학생 선발 과정을 돕기 위한 지침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영국이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똑똑한 아이들의 잠재력을 사장시켜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교육시장의 주체인 학생들이 스스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자는 취지도 있다.

영국 정부는 종전에도 11세에 치르는 전국학력평가에서 상위 5%의 점수를 얻은 학생들에게 일부 추가 교육 기회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국립영재아카데미의 프로그램만 듣도록 해 효율성이 떨어졌다.

또 지역별.학교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국 석차만으로 뽑다 보니 과외비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 자녀는 거의 포함되지 않고 중산층 이상 가정의 아이들만 주로 포함됐다. 실제로 중등학교의 30% 이상이 이 아카데미에 학생을 한 명도 보내지 못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치른 시험으로 판단을 내린 결과 대기만성형 학생들이 혜택을 보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텔레그래프는 "새 프로그램 도입은 정부가 국립영재아카데미에 실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계획을 위해 영국 정부는 일단 6500만 파운드(약 12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후 필요에 따라 9억3000만 파운드의 '개별 맞춤학습' 예산 중 일부를 추가 투자할 방침이다. 실무작업은 비영리 교육기관인 영국교사센터(CfBT)가 맡는다. 이 단체의 팀 에멧 개발국장은 "(낙후된) 학교교육 때문이든, 가정환경 때문이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출한 아이들을 발견해 지원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타임스는 "학생들을 '교육 소비자'로 전락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상당수 노동당 의원과 이 계획을 엘리트주의의 산물로 보고 있는 일부 교사 사이에 큰 논란이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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