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부자 로또, 가난한 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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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45개의 숫자 중에서 6개를 골라 적중시키는 로또의 당첨 확률은 약 8백14만분의 1이다. 12개 프로팀(여섯 경기)의 스코어를 알아맞히는 축구토토의 당첨 확률은 약 1천6백77만분의 1이다. 수학적으로는 토토 당첨이 로또 당첨보다 두배나 어렵다.

그러나 토토의 당첨 확률은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더 높아질 수 있다. 팀 간 전력 차가 뚜렷할 경우 승패 정도는 쉽게 점칠 수 있고, 과거 데이터나 출전 선수의 면면을 잘 분석하면 점수 차도 대략이나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토토 방식과 비슷한 이탈리아의 '토토세이'를 대상으로 분석했을 때 당첨 확률은 50만분의 1~80만분의 1로 나타났다. 토토 1등에 당첨될 확률이 사실은 로또에 비해 10~16배 높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구매 행렬은 대부분 로또 쪽으로 몰린다. 왜 그럴까.

우선 로또는 쉽고 간편한 반면 토토는 이런 저런 연구와 분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귀찮고 번거롭다. 토토의 주고객층인 스포츠 팬들의 저변도 취약하다. 여러 종목에 걸쳐 '반짝 팬'은 많지만 한 종목에 깊이 천착하는 '골수 팬'은 드문 게 한국적 현실이다. 팀 간 전력을 분석하고 승부를 예측한 뒤 직접 돈을 걸어놓고 자신의 희망대로 되기를 바라며 응원에 나설 정도의 열혈 팬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정적인 것은 당첨금의 차이다. 로또는 당첨되면 몇십억, 몇백억원인데 토토는 크게 터져봐야 몇억원이다. 이 정도 돈으로는 팔자를 고칠 수 없다.

그래서 로또는 매주 6백억원어치 이상 팔리는 반면 토토는 10억원어치의 매출을 올리기에도 급급하다. 그 결과가 '부자 로또, 가난한 토토'다. 국민은행과 KLS 등 로또 사업자는 막대한 흑자로 즐거운 비명을 올리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스포츠토토㈜ 등 토토 사업자는 쌓이는 적자에 한숨만 내쉰다.

토토 사업자 측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토토, 즉 체육복표 사업의 앞날이다. 체육진흥기금 마련과 건전한 여가문화 구축을 목표로, 여야 합의로 도입한 국책사업이 뿌리도 내려보지 못한 채 재부실화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토토 사업자 측은 갖가지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은 다양한 형태의 상품 개발이다. 그러나 문화관광부 등 당국이 '사행성 방지'를 명분으로 가하고 있는 각종 규제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

현재 토토에 대한 규제는 매우 엄격하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해외에서 치르는 월드컵 지역예선 등 주요 A매치나 박세리 선수가 '성대결'을 했던 골프대회, 올림픽 출전 티켓이 걸려있었던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같은 것은 세간의 관심이 큰 스포츠 이벤트였다. 그러나 이를 대상으로 토토를 발매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경마만 하더라도 단승.복승.쌍승식 등 다양한 베팅이 가능하지만 토토 방식은 천편일률적으로 고정돼 있다. 많은 규제의 예 가운데 일부다.

사실 사행심 문제라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로또는 아무나 끼어드는 '돈 놓고 돈 먹기'지만 토토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사람들의 '돈을 걸고 즐기는 게임'이 아닌가. 게다가 토토는 아무리 해봐야 로또 매출 규모의 10분의1 선이라는 게 세계적인 통례로 나와 있다.

사행성을 부추기라는 얘기가 아니다. 토토 사업자 측에 특혜를 주라는 얘기도 아니다. 어차피 복권 같은 '도박산업'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사행심이 그렇게 우려되면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고, 시작한 이상은 능력껏 뛸 수 있도록 공평하게 그라운드를 제공해줘야 한다.

김동균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