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 책임을 묻는 방식(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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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분노가 합리적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만사에 다 적용되는 원칙이다. 최근 전 국민의 분노를 산 두산전자의 페놀 방류사건의 수습 과정에도 이 원칙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공해가 미치는 엄청난 피해를 생각할 때 그 원인제공업체에 엄격히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책임이란 그 업체가 저지른 과오에 상응하는 형평성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분노만 생각해서 그 기업이 범한 과오를 넘어서 기업활동 전체를 파멸시킨다면 그것은 화풀이는 될지언정 이성적인 행동일 수는 없다. 우리는 기업에 대한 응징이 형평성을 잃고 곧 국민경제에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정부도 이 점을 성찰해서 앞으로 계속 제기될 산업폐기물 규제의 원칙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범죄를 다스리는데 공통된 문제이지만 잘못에 대한 처벌은 잘못과 처벌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처벌에 대한 위력으로 범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환경사범에 대한 현행 처벌규정은 재산형에 비중을 두어온데다 내용이 가벼웠던 탓으로 오염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만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형량의 가중이나 특별법의 제정에서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률이나 처벌규정을 강화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범법자에 대해 법률이 엄정히 적용돼야 하고 처벌의 내용이 공평해야 한다.
사실 환경오염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른 원인중의 하나는 정부가 비록 내용이 미흡하나마 공해사범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해 놓고도 이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폐수를 버젓이 흘려보내도 단속할 사람이 없고 적발이 되더라도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데 누가 엄청난 비용을 들여 방지시설을 하려 하겠는가.
그런 만큼 처벌규정의 강화와 새로운 법률의 제정에 앞서 명심해야 할 것은 법의 적용에서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공평성의 확보다.
전국의 모든 강·하천·호수가 썩어가고 있는 것은 어느 특정기업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한 모든 사람이 각성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다.
형평성의 문제와 함께 공해문제를 다루는데서 유념해야 할 것은 환경문제와 국민경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것이냐는 문제다.
사실 깨끗한 물,맑은 공기를 마시고 호흡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다면 문제해결은 간단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같은 이분법적 논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깨끗한 물,맑은 공기와 함께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할 절실한 필요를 우리는 안고 있다.
페놀사건을 일으킨 두산전자의 가동 중단으로 국내 가전업계의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정상 가동시기를 앞당기겠다는 정부의 판단은 이런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해당기업에 대한 응징의 효과과 거두어졌다면 국민경제상 불필요한 손실은 막는 것이 국민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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