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섭-길-화원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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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길게 네모진 흰 블록담 너머로
붉은 땅 후벼 파며 혹은 뒤척이며
사원의 낮 종소리도
한천에 가 잠기는
길은 거기서 웬만큼 끊기고 만다
길은 거기서 오래도록 차단되고 만다
마침내 보이지 않는 길
지상에 길은 없다
어둡고 추운 마을 아이들은 하나 둘씩
시퍼런 공기총을 든 낯선 사내들을 따라
바람 속 저 휑한 들녘 참새 잡이를 떠나고
연신 코를 훔치며 연탄 화덕을 돌보는
국밥집 아주머니의 국밥 같은 전생애가
설핏한 눈발을 맞으며
목판 위에 널브러진
길은 거기서 웬만큼 끊기고 만다
길은 거기서 오래도록 차단되고 만다
다만 저 피묻은 가슴속별의 길만 무성하다.
※경북 달성군 화원면에 대구 교도소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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