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 외국인 지분 몇 년새 30%까지 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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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은 이제 속도의 문제입니다. 증시 상황에 따라 자금이 들어왔다 빠지는 사이클이 반복되겠지만 몇 년 안에 외국인 지분율이 30%까지는 빠질 것입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임태섭(사진) 한국지점장은 23일 내년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팔자'를 계속할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올해 한국 증시의 최대 관심거리는 외국인의 움직임이었다. 올 증시가 지지부진한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한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외국인의 매도세였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올 들어 국내 시장에서 약 13조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총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40%에서 최근 37%대로 떨어졌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가 계속될지에 투자자들이 바짝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임 지점장은 "이 정도 비율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이 안정된 나라에서 외국인 지분이 30%를 넘는 곳이 없는데, 한국은 이미 자본시장이 체계를 갖춘 나라라는 설명이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 많이 들어온 때는 대우사태와 카드사태 등 시스템 위기로 주식값이 싸졌던 1999~2000년과 2003년 말이다. 이에 비해 지금은 "(한국 경제의) 시스템이 안정된데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성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한국은 투자처로서 매력이 떨어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임 지점장은 한국에서 외국인이 떠나는 것을 자본시장 선진화에 따른 '정해진 길'로 보면서도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를 떠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고작 4~5%대인 한국의 경제성장률이나 기업 실적의 더딘 증가세로는 연 9~11%씩 성장하는 중국 등과 경쟁할 수 없지요."

그는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며 "성장동력을 갖추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공통된 노력"을 강조했다. 장기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지금보다 10년 후에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성장할지 관심을 두기 때문이란다. 북핵 위기를 외국인들은 어떻게 보는지 물었더니 그는 "과거 10년의 학습효과가 있는데다 전쟁이나 북한 붕괴 같은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북핵은 실질적 위험요인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 직후 오히려 외국인이 '사자'로 돌아선 것도 초단기 투자자금이 주가회복을 점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증시는 올해 외국인 자금의 이탈에도 적립식 펀드가 버텨준 덕분에 장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임 지점장은 "한국 증시가 본격적으로 외국인 중심에서 기관 중심으로 옮아가려면 적립식 펀드보다 퇴직연금이 빨리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적립식 펀드는 언제라도 이탈 가능한 자금이기 때문에 장기투자가 가능한 퇴직연금 시장이 빨리 자리잡아야 증시가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골드먼삭스는 내년 코스피지수가 외국인 매도세 등으로 조정을 겪겠지만 2분기엔 1500선까지 갈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증권사의 전망보다는 약간 보수적이지만 내년 하반기 실적개선이 확인되면 외국인 자금이 재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임 지점장은 삼성투신과 메릴린치 한국 조사부 헤드 등을 거쳐 2001년 골드먼삭스로 옮겨 한국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글=안혜리 기자 <hyere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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