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함께 뛸날 오겠죠”/북한 리분희의 남북합훈 감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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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통일 반쯤 이룬 것 같아 뿌듯/북한주민들 95년 통일될 것으로 굳게 믿어
북한여자탁구의 에이스로 「코리아」팀의 주역이 될 세계랭킹 3위 리분희선수(23)가 사상 첫 남북한스포츠 단일팀에 참가하는 감상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일본 나가노시로 향하는 열차속에서 리는 수행취재중인 본사 방원석특파원에게 구술했으며 방특파원이 정리한 내용을 확인,자필사인과 함께 게재를 허락했다.
이제 유일팀이 탄생했으니 통일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오늘 비록 남의 땅이지만 남녘의 형제들을 만났으니 통일의 반쯤은 이뤄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까지도,아니 오늘 비행기속에서도 과연 유일팀(단일팀의 북측 표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초조감으로 잠시도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리타공항에서 눈에 익은 남조선의 형제를 만나 뜨거운 포옹을 하고보니 비로소 유일팀을 이루어내고야 말았다는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정말 한없이 기쁘기만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부터 탁구뿐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유일팀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비록 탁구에서지만 유일팀을 이뤄 매우 감격스럽고 다음달말 열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통일도 앞당겨지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믿음직스런 현정화와 한소조(팀)을 이뤘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간이 부풀어 올라(간염인듯) 최근들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정화는 나보다 한살이 어린 것으로 알고 있으나 차분하고 속공에 능해 위기를 잘 풀어가는 우수한 선수다.
내가 정화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85년 유럽을 순회하며 열렸던 유러­아시아 대회에서다.
그후 정화를 마지막으로 만난 작년 11월의 말레이시아 아시아선수권대회까지 정화와 개인적으로 네번 싸웠으나 단 한차례밖에 이기지 못했다.
그만큼 정화는 우수한 선수이며 유일팀의 우승을 위해 나는 정화의 좋은 보조자가 되겠다.
정말이지 나는 탁구선수가 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탁구를 통해 북남통일의 선봉장이 되고 있으며 감격스런 역사의 현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탁구선수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함흥성남인민학교(국민학교)시절 탁구로 세계를 제패해 인민의 영웅이 된 박영순(사망)언니가 부러워 그만 탁구를 하게된 것이다.
인민학교 5학년인 11세때 탁구의 길로 들어섰고 82년에는 국가체육인(국가대표선수)이 됐다. 곧이어 82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6차 아시아청소년선수대회에 출전,국제무대에 처음으로 나갔다.
성적이 좋자 84년에는 공훈체육인이 되는 영광을 누렸고,그 덕분에 요즘에는 한달에 1백50원씩 받으며 여유있게 생활하고 있다.
탁구덕분에 85년 함흥에서 평양으로 이사해 창광거리에서 살고 있으며 현내 평양체육대학 4학년에 재학중이다.
북조선 인민들은 오는 95년에 북남통일이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이때쯤 나도 결혼을 생각할 것이다.
그동안 대표생활을 하면서 30여차례 해외에 나가 봤으나 이번만큼 감정이 동요된 적은 없다. 내가슴은 매우 떨리고 있다. 기필코 탁구를 통해 조국통일을 이루는데 앞장서겠다.
앞으로 한달동안 합동훈련을 하면서 그동안 부족하다고 생각한 체력훈련과 기술훈련에 몰두하겠다.
그리고 남조선 형제들과 호흡을 잘 이뤄 동질감을 갖도록 노력하겠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의 땅이 아닌 서울에서도 연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서울도 우리땅인데 못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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